세련된 범죄 영화라면 무엇을 훔치는가보다 '어떻게' 훔치는가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미션 임파서블'에서 공중에 매달린 채 거미처럼 살금살금 천장에서 내려와 디스켓을 복사하는 톰 크루즈의 모습은 철저한 보안을 뚫고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는 방법을 제시하는 동시에 도둑질 영화에 전혀 새로운 미장센을 연출했다. '미션 임파서블'에 대한 기억은 단적으로는 하얀 방에 대한 기억이다.'이탈리안 잡'(Italian Job)의 금고털이 장면도 기억에 담을 만하다. 베네치아 저택의 2층 한 켠에 놓인 금고를 훔쳐 수로로 도망가는 장면은 꽤나 매력적이다. 보이지 않는 공간의 길이를 컴퓨터로 재고, 치밀하게 폭약 작업을 해 두 층의 천정과 바닥을 동시에 폭파시켜 금고를 수로에 똑 떨어뜨리는 수법은 오락 영화가 지녀야 할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그것도 시작부터. 이렇게 정교한 도둑질로 시작된 영화는 공범의 배신과 겨우 살아남은 자들의 복수극으로 이어지면서 짜임새 있는 스릴러로 전환한다.
69년 마이클 케인 주연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이탈리안 잡'은 에드워드 노튼과 마크 월버그라는 두 연기파 배우의 만남이란 점에서 크게 눈길을 끌었지만 갖가지 에피소드와 조연의 활약으로 더욱 볼거리가 많은 영화로 탄생했다. 리메이크작에 대해 인색하게 별을 주는 평론가들도 이 영화에 대해서는 원작보다 후한 점수를 주었다.
베네치아에서 3,500만 달러짜리 금괴 절도를 멋지게 해낸 존(도널드 서덜랜드), 찰리(마크 월버그) 등은 축배를 들지만 스티브(에드워드 노튼)의 배신으로 수장될 위기에 빠진다. 존은 죽고,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 찰리는 동료를 규합, 복수에 나선다.
그들의 우선 섭외 대상은 존의 딸인 스텔라(샤를리즈 테론). 아버지는 금고털이 전문 도둑이었지만 스텔라는 경찰의 의뢰를 받고 금고를 여는 '제도권' 금고 전문가. 찰리와 스텔라는 LA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는 스티브의 집을 털 계획을 세운다.
스텔라가 케이블 업체 직원으로 위장해 스티브에게 접근하다가 실패, 원래의 복수극이 실패로 끝남으로써 영화는 또 한번의 긴장을 던진다. 결국 길거리에서 금괴가 가득 든 금고를 땅으로 꺼지게 만드는 폭파 기법으로 이들은 또 한 건을 올리게 되는데, 진행 속도가 빨라 오락 영화로서의 구성에 흠잡을 데가 없다. 다만 배신자 스티브가 "상상력이 부족한" 인물로 그려지는 것은 좋지만, 치밀하지 못한 성품의 상대하기 수월한 상대로 나온 것은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이를테면 케이블 업체 직원으로 위장한 스텔라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 것은 보안 의식이 철저해야 할 스티브의 행동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반면 찰리는 완벽할 정도로 명민한 도둑으로 설정돼 애초의 팽팽한 것으로 설정됐을 두 사람의 대결이 다소 김이 빠진 점이 못내 아쉽다. "세상엔 비위를 건드려서 안 되는 게 세 가지 있지. 마누라, 장모, 우크라이나인" "사람은 믿되 그 속의 악마는 믿지 말라" 같은 재치 넘치는 대사와 베네치아 수로를 역동적으로 그려 낸 도입부의 요트 추격장면, LA에서 펼쳐지는 자전거보다 더 민첩한 BMW의 꼬마 자동차 '미니'와 헬기의 추격전 등 볼거리가 화려해 비교적 알찬 블록버스터에 속한다. 감독 F. 게리 그레이. 10월3일 개봉.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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