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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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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어디로 갔을까

입력
200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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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씨를 지지리도 못 쓰는 편이라 어렸을 적 구박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우물 정자로 공책 한 권을 채우라는 숙제를 내주었고 초등학교 때의 담임 선생님은 방과 후에 특별 훈련을 시켰다. 선생님은 나에게 "마음을 편히 먹고 천천히 쓰라"고 가르쳐 주셨지만 아무리 마음을 편하게 먹어도 글씨는 삐뚤빼뚤이었다. 아니, 더 삐뚤빼뚤이었다.글씨만 잘 써도 군대 생활이 편하던 시절이었다. 아마 취직도 쉬웠을 것이다. 자필 이력서라는 제도가 괜히 생겼겠는가. 서점에 가면 '펜글씨 교본'이라는 이름의 책들이 눈에 잘 띄는 자리에 꽂혀 있었다. 동네 한 귀퉁이엔 반드시 서예학원이 있었다. 나 같은 '글씨 지진아'들이 단골이었다. 대학에 들어가니 타자 강습이 유행이었다. 물론 나는 타자를 배웠고 결국 전동 타자기를 샀다. 자판을 두들기니 멋진 글씨가 튀어나왔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이제 더 이상 글씨 때문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는구나,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하여 펜글씨 교본과 타자 1급의 시대를 완전히 종식시켰다.

나는 가끔 궁금하다. 방방곡곡의 그 많던 타자, 펜글씨 강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들을 하며 살고 있을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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