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하러 한국에 온지 벌써 7개월이 되었다. 그 동안 놀라운 경험을 많이 했다.첫째는 음식이다. 러시아의 주식은 빵과 감자라 감자요리는 아주 다양하다. 그런데 오히려 감자요리 종류가 많지 않은 한국에서 감자 요리 중 감자 샐러드와 감자 샌드위치를 처음 보았다. 반대로 몇 년 전부터 러시아에서 인기를 모았던 한국식 샐러드는 정작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다. '한국식 당근무침' 이 대표적인데 채를 썬 당근에 후춧가루, 고춧가루, 식용유 등을 섞은 것이다. 처음에는 고려인이 많이 사는 극동과 시베리아에서만 팔았지만 지금은 러시아 전역에서 안 파는 곳이 없다.
두번째로 한국은 안전하고 친절하다. 서울에서 나는 종종 한국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맥주집에서 놀곤 한다. 밤 10시가 넘으면 안전을 염려해 밖으로 나가기를 무서워하는 러시아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또 언젠가 편지를 보내고 우체국을 나오는데 직원이 "손님, 손님"하고 부르면서 쏜살같이 달려왔다. 거스름 돈으로 오천원짜리를 줘야 하는데 천원짜리를 주었다는 것이다. 러시아 직원 같으면 틀림없이 "앗싸! 돈 벌었다" 하고 모르는 척 했을 것이다.
세번째로 한국 사람들은 아주 부지런하다. 러시아에서는 거의 모든 직원들이 유급휴가 한 달을 받는다. 게다가 주 5일제이며 국경일이 휴일과 겹치는 경우 그 다음날도 쉬기 때문에 이래저래 휴일이 많다. 러시아에서 한국학을 가르쳤던 한국 선생님은 농담처럼 "러시아 사람들은 노는 틈틈이 일한다"고 했는데 와서 보니 그 말이 이해가 간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람들은 가족관계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설날이나 추석 때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는 바람에 고속도로가 막히고 기차표나 비행기표 구하기가 어려운 모습은 러시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지난 추석 때 한국 친구의 집에 가보았는데 온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러시아에서는 모든 일가 친척들이 모일 기회는 결혼식 이외에는 거의 없다. 1990년대 초 소비에트 정부가 무너지면서 각박해지고 살기는 더욱 어려워진 러시아도 친척간의 관계가 가까워진다면 좋겠다.
태풍이 지나간 한국의 가을 하늘은 역시 놀라울 정도로 푸르다. 하지만 나는 눈이 그립다. 조만간 러시아에는 눈이 내릴 것이다. 난 어쩔 수 없는 러시아 사람인가보다.
아나스타샤 수보티나 러시아인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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