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D사의 A부장은 요즘 번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올들어 경영실적이 악화하자 회사가 최근 과장급 이상 간부 1,500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명예퇴직의 조건은 ‘퇴직금+2년치 연봉’. A부장은 “어차피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생각에 상당수가 신청할 것 같다”며 “어쩌면 IMF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나갈지도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인력감축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최근 기업들이 계속된 경기침체를 견디다 못해 비용절감 차원에서 너도나도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노조의 반대 등으로 해고가 불가능한 만큼 퇴직금을 듬뿍 얹어주는 조건으로 명예퇴직을 대규모로 추진하고 있다.
‘SK글로벌 사태’로 상당한 타격을 입은 SK그룹은 계열사별로 대규모 인력감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사업개발본부를 폐쇄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한 SK네트웍스(구SK글로벌)는 기존 2,700명이었던 인력을 1,950명으로 줄였다. SK케미칼도 직물사업 분야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서 119명을 내보냈다.
은행권은 이미 감원 태풍의 중심에 놓여있다. 우리은행은 본점 차장급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고, 7월말 명예퇴직을 실시했던 외환은행도 대주주가 바뀜에 따라 다시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할 방침이다.
당장 경영에 큰 어려움이 없는 대기업들도 내실경영을 위해 감원을 검토하고 있다. 올들어 실적이 좋지 않았던 삼성전기는 최근 경영진단 결과 부가가치가 낮은 사업부의 정리 필요성이 제기돼 인력감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10월부터 희망퇴직자 수를 대폭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KT도 인력감축을 유도하기 위해 최근 평소보다 더 많은 퇴직급을 지급하는 ‘특별 명예퇴직제’ 방안을 발표, 이달 말까지 신청자를 받고 있다. KT 관계자는 “수 천명이 신청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심각한 것은 인력감축 태풍이 당분간 계속 몰아칠 것이라는 점.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달 종업원 100명 이상 기업 1,352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7.7%가 올해 안에 인력감축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 관계자는 “올들어 경기침체가 계속된 데다 최근 환율상승 등 경영 불안요소까지 겹치는 바람에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내실을 다지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인력감축이 투자부진 등으로 가뜩이나 활력을 잃은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실업이 늘어나면 가계부실, 소비위축 등으로 이어져 경제가 악순환 구조로 빠질 수 있다”며 “경제를 선순환 구조로 돌려놓기 위한 전반적인 정책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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