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필동 남산 자락에 위치한 동국대학교. 숨을 몰아 쉬며 언덕을 오르다 보면 대학본부 왼편으로 살짝 튀어나온 양지 바른 언덕 위로 우뚝 솟은 만해 시비가 눈에 들어온다. 동국인들은 만해 시비를 자랑스러워한다.시인, 독립운동가, 종교인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영원한 '님'으로 남아 있는 만해 한용운은 유서 깊은 불교 학교인 동국대의 1회 졸업생이자 초대 동창회장이었다. 그러나 고고한 삶과 뛰어난 문장에 가려서인지 동국대 교정에 남은 만해의 발자취는 상대적으로 '묻혀진 역사'였고, 이는 후배들에게 늘 아쉬움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동문들은 1987년 시비를 세울 때 선뜻 주머니를 털었다. 덕분에 80, 90년대 대학을 다닌 동국대생들은 만해시비에 얽힌 추억을 한 자락쯤은 가지고 있다.
지금은 유부남이 된 이모(29)씨는 "만해 시비는 '첫사랑을 떠나보낸 상흔'"이라고 말한다. 1995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열흘 남짓 앞두고 '님'이 떠나던 날, 이씨는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시비를 찾았다. 감상에 젖어 술잔을 기울이며 바라본 시비에 새겨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는 시구는 그날 만큼은 이씨의 노래였던 셈이다. 이씨는 "그래서인지 지금은 부인이 된 과 후배와 함께 다닐 때도 시비 앞에만 서면 늘 애인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고 웃었다.
하지만 '님의 침묵'이 모든 동국인에게 실연의 흔적만으로 남아 있는 건 아니다. 올초 대기업에 입사한 '왕년의 문학 청년' 김승언(26)씨는 신춘문예철마다 남몰래 시비를 찾아 삼배를 올렸다고 한다. 김씨는 "멋적은 얘기지만 문학청년이었던 그 시절 만해는 내겐 신앙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나의 시를 읽는 것이 늦은 봄 꽃 수풀에 앉아 마른 국화를 비벼 코에 대는 것과 같을는지 모르겠다"고 읊었던 만해. 그런 낭만이 더해져 만해의 시비는 요즘엔 캠퍼스 커플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도서관에서 취업준비에 한창인 졸업반 박모(22·여)씨는 "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때는 나처럼 짝 없는 사람들은 시비 앞을 지나기가 꺼려진다"며 "근처를 지날 때마다 이번 가을엔 꼭 애인을 만들겠다고 다짐한다"며 웃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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