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이 진열된 서가에서 나는 오래 머문다. 새로 나온 사전들을 들춰보고 냄새도 맡아본다. 때로는 영원히 배우지 않을 것 같은 언어의 사전도 펼쳐본다. 요즘에는 정말 아름다운 사전이 많이 나온다. 장정이며 속살이며 안 예쁜 데가 없다. 그러나 그 사전들이 저절로 나올 리는 없을 것이다.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들어가 사전 편찬 업무를 맡게 되는 젊은 여자, 혹은 남자가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맞춤법도 제대로 몰라 구박도 받고,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단순작업에 기가 질리고, 때론 책과 교정지로 가득한 좁은 책상과 사무실에 답답함도 느끼고, 옥상에 올라가 담배도 뻐끔거리면서, 결국은 하루종일 글자의 숲을 서성이는 사람.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흰머리도 희끗거리고, 맞춤법을 헛갈리는 후배들을 한심해 하고, 책상에 앉아 새로 떠오른 예문을 이면지에 끄적거리고, 다른 나라 사전들의 새로운 편집 기법에 내심 감탄하기도 하면서 묵묵히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쓰는 사람을 본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어느새 그 사전과 함께 늙어버린 그 혹은 그녀가 있을 것이다.
사전의 갈피에 코를 파묻고 그들의 냄새를 맡는다.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