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골목에서 어린 아이들이 싸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의 어른들이 싸움부터 말리고 볼 것이다. 그리고 나무라더라도 가장 큰 아이를 집중적으로 나무랄 것이다. 시시비비를 가려주려고 할 어른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어린 아이들의 싸움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지 무슨 옳고 그른 게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이게 어린 아이들의 싸움에 대한 어른들의 전형적인 해결 방식이다. 이 해결 방식은 집안에서도 학교에서도 통용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교육을 받고 자라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해결방식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은 워낙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이기 때문에 싸움 자체를 싫어하는 것인가. 이와 관련해 한가지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보수 신문들 사이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나온 시민단체들의 성명서가 걸작이었다. 그 내용인즉슨, 두 신문은 싸움을 즉각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두 신문이 서로 싸우는 바람에, 그렇지 않았으면 결코 밝혀지기 어려운 그 신문들의 비리가 막 쏟아져 나오고 있던 참에 그런 성명서가 나왔으니 언론개혁을 바라는 사람으로선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싸움을 싫어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싸움을 싫어한다고 해서 싸움을 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데에 있다. 국가별 비교 통계는 없지만, 한국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내부 싸움을 많이 하는 나라일 것이다. 어쩌면 내부 싸움을 너무 많이 해온 탓에 질린 나머지 싸움을 무작정 싫어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게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성향이건, 제3자가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역할을 포기하고 싸움을 하는 당사자들을 양비론으로 꾸짖을 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누가 옳건 그르건 싸움을 하는 순간 모두 다 똑같은 수준의 사람으로 전락한다면, 그것이 사회 전반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란 과연 무엇일까. 한가지만 지적하자면, 상호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할 세력들이 마땅히 싸워야 할 일조차 피해가면서 상호 유착하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더 커지게 되는 건 아닐까.
청와대와 일부 보수신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지켜보면서 해본 생각이다. 반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그 지루한 갈등에 대해 우리 사회는 그간 심판을 회피하고 '어린애들 싸움'을 대하듯 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과연 이게 바람직한 건가.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한국신문협회, 한국언론학회, 한국언론재단 3자 공동으로 언론의 정치적 보도의 공정성을 검증하는 위원회를 만들자. 그간 양쪽의 갈등에 대해 어느 쪽 편도 들지 않은 중립적인 사회과학자들을 위원으로 영입하여 종합보고서를 발간토록 하자.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의 평가 기구를 두는 것도 좋겠다.
보수 신문들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과연 이게 사실인지 검증해보자. 노무현 정권은 보수 신문들이 악의적인 왜곡 보도를 일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 또한 사실 여부를 검증해보자. 과연 어느 쪽의 주장이 더 타당한 건지 그걸 가려줄 수 없을 만큼 한국 사회가 온통 '정치화'되어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이 제안에 찬성하는지, 반대한다면 왜 반대하는지, 양쪽의 의견을 듣고 싶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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