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휩쓸고 간 나라에는 오갈 데 없는 이들이 넘쳐났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의 기아와 빈곤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풀무원의 목표였다. 자연히 풀무원을 찾는 이들은 전쟁의 피해자들이 많았다. 전장터에서 팔과 다리를 잃어버린 상이군인들도 사회에서 냉대를 받고 오갈 데가 없어지자 풀무원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강원도 홍천 출신의 엄봉준도 그런 사람이었다. 엄씨는 사정이 더욱 딱해서 팔 한쪽이 없는데다 눈까지 하나 멀어 불구자 중에도 상불구자였다. 전투 중에 입은 중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신앙을 접하게 된 엄씨는 제대 후 전도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엄씨가 거리에서 전도지를 돌릴라치면 사람들은 손대신 낀 쇠갈고리를 보고 기겁을 하고 지레 도망하는 바람에 전도활동이 여의치 않았다. 그 뒤 엄씨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풀무원에 들어왔다.
엄씨는 성격이 쾌활하고 적극적이어서 풀무원 생활에 가장 잘 적응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동네이장이 "엄씨 얼마나 불편하지"라고 물으면 엄씨는 갈고리로 호미를 슥슥 긁어보이며 "하나도 불편한데 없습니다"라고 히죽 웃어보이곤 했다. 엄씨는 학교 강사를 지낸 엘리트였지만 사회의 냉대를 피해 풀무원에 들어와 새로운 삶을 찾은 경우다. 8년간 나와 함께 지낸 엄씨는 그 뒤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짓고 산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희성은 엄씨와는 다른 경우로 내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풀무원 식구다. 박씨는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지만 공동체 생활을 통해 바른 삶을 깨우쳐 돌아갔다.
풀무원이 생긴 뒤로 농장에는 자원봉사 학생들이 종종 찾아왔다. 주로 신학교 학생들로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해 틈틈이 내려와 농사일과 허드렛일을 거들어 주었다. 이런 학생 가운데 나를 잘 따르던 여대생 하나가 한번은 상의할 일이 있다며 찾아왔다. 이 여대생은 "전도를 시킬 목적으로 알고 지내는 구두닦이 청년이 하나 있는데 이 청년이 무언가 큰 일을 꾸미고 있어 걱정입니다"며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사연은 이랬다. 청년은 당시 유명했던 정치깡패 이정재 조직에 몸담았던 깡패출신으로 경찰에 기는 신세였다. 당시는 5·16쿠데타를 일으킨 혁명군이 사회기강을 바로잡는다며 닥치는 대로 깡패들을 잡아다 거리행진을 시킨 뒤 탄광이나 외딴 건설현장으로 보내던 때였다. 건달이나 깡패들은 검거선풍을 피해 도망을 다녔는데 이 청년도 구두닦이로 변신해 곳곳을 전전하고 있었다. 주일이면 사람이 모이는 교회를 찾아 구두를 닦던 청년은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책임지던 여대생의 눈에 띄었고 신앙생활에 눈을 뜨게 됐다.
그러던 청년이 하루는 여대생을 찾아와 작별인사를 한다면서 그 동안의 일을 털어놓았다. 구두닦이로 변신한 자신의 뒤를 추적하던 경찰이 끝내 은신처를 발견하고 체포하려하자 청년은 경찰을 때려눕히고 산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10여일을 산속에서 숨어지낸 청년은 묵호항을 통해 일본으로 밀항할 결심을 하고 산을 내려 온 김에 여대생을 찾아와 작별인사를 고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풀어놓은 여대생은 나에게 "문제는 밀항이 아니라 이 사람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려 한다는 겁니다. 선생님"하며 이제는 거의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여대생은 "'돈은 마련했느냐'고 물으니까 이 사람이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밀항선 주인한테 일단 착수금만 주고 배에 올라탄 뒤에 적당한 때를 봐서 주인을 바다에 수장시키고 배를 몰아 일본까지 갈 겁니다'라고 답하는 게 아닙니까. 선생님, 어떡하면 좋지요"라고 나에게 대책을 물어왔다. 나는 곧장 여대생을 앞세워 청년이 숨어있는 곳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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