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식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의 부결은 향후 청와대와 국회의 '무한대결'(無限對決)을 예고하고 있다. 한나라당·민주당 의원들이 26일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싸늘했던 청와대와 두 당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새해 예산안과 이라크 파병문제 등 현안의 처리도 결코 순탄치 않아 보인다.우선 이번 일로 노 대통령의 리더십이 적지않은 손상을 입었다. 전날 직접 기자회견장에 나서 국회에 협조요청을 했으나 일축 당함으로써 신4당체제에서의 '삼면초가'(三面楚歌)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고심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못지않은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됐다는 게 중론이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은 "후보자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상당한 하자가 있다"고 말했지만, 과연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장상·장대환 총리 임명동의안을 부결했을 때와는 국회 밖의 분위기가 다르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두 당이 힘으로 국정의 발목을 잡았다"는 비난 여론이 고개를 들 소지가 다분하다. 이미 한나라당이 이달 초 김두관 행자부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던 것에 대해서도 무리한 일이었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터다. 더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조는 양당 모두에게 득이 될 게 없다는 분석이다. 청와대와 통합신당이 '정치적 약자'로 비쳐져 동정론이 일 공산이 크고, 자칫 내년 총선구도가 '신당 대 나머지 정당' 또는 '개혁 대 수구'로 짜이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대목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런 '후폭풍'을 예측하고도 반대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분당사태에 대한 반발 심리가 일부 작용했겠지만, 한나라당의 경우 처음부터 계획적이었다. 표결에 앞서 열린 한나라당 의총에서 많은 의원은 "윤 후보자가 적임인지 여부가 중요할 뿐 표결 이후의 상황에 대한 정치적 고려는 없다"고 주장했다. 여론의 역풍이 있다면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윤 후보자의 자질문제가 당이 입을 정치적 부담과 맞바꿀 만큼 심각하다고 보는 이는 한나라당에서도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의원 대다수가 반대쪽에 선 것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미움' 때문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당 일각에서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가선 안된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결국 이번 일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관계가 갈 데까지 갔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여기에 민주당이 반노(反盧)전선에 가세할 경우 청와대와 국회의 적대적 대립은 최소한 총선 때까지, 어쩌면 그 이후로까지 장기화하게 된다. 청와대와 국회 모두가 하루빨리 국면타파의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