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아리에스 지음·문지영 옮김 새물결 발행·2만5,000원"나는 아직 젖먹이였던 아이 두세 명을 잃었지. 회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슬프지는 않아." 요즘 이런 말을 하는 부모가 있다면 머리가 어떻게 된 사람쯤으로 취급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상가 미셸 드 몽테뉴(1533∼1592)가 거리낌 없이 말할 정도로 16세기 유럽, 적어도 프랑스에서 이런 생각은 별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은 몽테뉴처럼 "아이들에게는 정신 활동도, 또 뚜렷이 구분되는 신체 형상도 없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역사학자 아리에스(1914∼1984)가 1960년에 초판을 낸 이 책은 출판과 동시에 두 가지 점에서 서구에서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아동이나 가족에 대한 관념이 근대와 함께 도입되고 유포된 것이라는 주장과 그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그가 동원한 사료들 때문이다. 특히 아리에스는 당시 역사학자의 관심 밖이던 묘비, 조각, 판화, 초상화, 회화 등의 그림 자료와 온갖 교육서, 편지, 가정 일기, 인구사가들이 제시한 통계 수치를 동원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해 나갔다.
저자에 따르면 중세는 교육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적절한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알기 위해 지금 의학자와 교육·심리학자들이 쏟는 노력을 당시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젖을 뗀 아이들은 곧장 어른의 자연스러운 동반자가 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17세기 말부터 상황이 바뀐다. 종교개혁가와 도덕론자들에 힘입어 가족 내에서 아동의 독자성과 모성애에 대한 자각이 출현한 것이다. 더불어 어른의 일을 보고 배우도록 하는 견습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을 독립적으로 모아 가르치는 학교 교육이 확립됐다. 오랜 시간 구속해서 가르치는 학교 교육은 아이들을 도덕적으로 보호하고 바르게 자라도록 해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의 결과였다.
이런 의식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아리에스는 숱한 그림들에 나타난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10세기 화가들은 어린이를 덩치 작은 사람으로만 그릴 줄 알았다. 하지만 17세기가 되면 혼자 있는 아이의 초상화 수가 많아지고 보편화한다. 가족 초상화도 이때쯤 아이들을 중심으로 편성되기 시작한다.
아이를 중심으로 하는 그림은 어머니가 아이의 어깨를 붙잡고 있고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루벤스의 가족 초상화, 아이들이 서로 입맞추고 포옹하면서 장난과 애무로 어른들에게 활기를 주고 있는 장면을 담은 반 다이크 등의 가족 초상화에서 나타난다. 나아가 그는 18세기에 영아사망률이 감소하면서 인구폭증이 일어난 것은 의료 및 위생의 발달이 아니라 바로 '영아살해'로 대표되는 중세적 '아동관'이 변화했기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아동과 가족에 대한 의식 변천사라고 불러도 좋을 이 책에서 저자는 가족이 생물학과 법률로부터 해방되어 하나의 가치, 표현의 주제, 정서적 계기가 된 시점은 바로 아동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 생겨나고 또 학교 교육이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가족이 주는 내밀함과 그 때문에 생긴 안락함에 대한 요구는 하층민과 부르주아의 물질적 생활양식의 차이를 한층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서양에 한정된 것일 뿐 한국이나 중국 등 동양 모습과는 많은 거리가 있다. 부모와 자식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한 불교나 육아와 어린이 교육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유교의 전통은 아리에스식의 해석을 어렵게 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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