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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재정규율 세워 예산거품 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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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재정규율 세워 예산거품 빼야

입력
2003.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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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발표된 내년도 예산안은 참여정부의 첫 작품으로 정책의지를 가늠할 수 있어 다각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국내총생산(GDP)과 대비할 때 내년 예산규모는 선진국에 비해 아직 작다고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재정규모를 줄이고 있는 선진국들의 추세와 반대로 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내년 예산안의 첫 번째 특징은 균형재정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불투명한 경기 전망과 불안정한 재정기반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초래된 재정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호흡 고르기 측면도 있다.

균형건전 예산이라고 하지만 적자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내년 실질성장률을 5.5%, 경상성장률을 8% 내외로 전망했으나 현재의 여건으로 볼 때 실현가능성이 의문시된다.

또한 내년 이후 중장기적 경상성장률을 7.3∼8%로 잡았는데, 이것도 전망이 불투명하다. 현재와 같은 설비투자 부진이 계속 이어질 경우 성장잠재력이 훼손돼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세계잉여금의 대부분을 소진한 상태이어서 추경을 편성할 재정소요가 발생할 경우 국채 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세출면에서는 방위비와 복지비의 증가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감축과 대조를 이룬다. 내년 국방비는 올해보다 8% 늘어난 18조9000억원으로, 예산증가액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방위비에 대해서는 국민 경제적 파급효과를 고려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고, 무엇보다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복지비는 9.2% 증가했는데, 그것은 한번 지출이 이루어지면 지속적으로 재정에 부담을 주게 된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단돈 1만원이라도 한번 수혜를 받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권리로 느껴지기 때문에 없애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 막는 임시 방편'이 아니라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고, 성장잠재력의 확충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연구개발(R&D) 투자를 8.0% 늘리는 한편 산업 및 중소기업 지원을 11.2% 줄인 것도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 지원이 감소되고 연구개발을 통한 간접지원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만 연구개발의 경우 성과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기 쉽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민간의 연구개발과 구분되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규범적인 정립이 필요하다.

흔히 경기진작용으로 평가되는 SOC 투자는 6.1% 줄었다. 그간 사회간접 투자확대가 꾸준히 있었고 올해 추경도 어느 정도 감안된 것이지만, 차제에 정부 공사의 입찰제도, 민자유치 등의 제도적 기반을 철저히 다져 관급공사에서 발생하는 거품을 제거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우리 예산의 사업들을 미시적으로 뜯어보면 낭비적 요소가 많다. 일년 벌어 일년 먹고 사는 예산 행태도 극복해야 한다. 정부의 각종 중장기 사업 계획과 예산이 연계되어야 한다. 계획 없는 예산은 낭비이고, 예산 없는 계획은 허구이기 때문이다.

정부 개혁과 관련해 지금까지는 주로 조직 개편에 관심이 쏠려 있었으나 이제는 재정개혁을 시도할 시기이다. 그 방향은 재정규율을 확립하는데 맞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재정법을 도입하는 등 재정회계 관련 법령을 개정하기 위해 국회에 재정개혁 특위가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내년 총선에 사활이 걸려있는 국회의원들이 이를 제대로 심의할지 의문이다. 국민 복리보다 지역구 사업의 확보로 인기몰이에 급급할 우려도 있다. 그래서 국민의 감시기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이 원 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재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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