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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13>崔秉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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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13>崔秉宇

입력
2003.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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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9월26일 언론인 최병우가 대만해협 진먼섬(金門島) 부근에서 실종됐다. 34세였다. 실종 당시 최병우의 직책은 코리아타임스 편집국장 겸 한국일보 논설위원이었다. 중국 푸젠성(福建省) 아모이섬(厦門島) 동쪽에 자리잡은 진먼섬은 대만 국민정부의 대륙 수복 전초 기지로서 섬 전체가 일종의 요새였는데, 그 해 8월23일부터 중국군이 이 섬에 포격을 가하면서 중국과 미국·대만 사이에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었다. 최병우는 그 해 9월11일 폭탄이 쏟아지는 진먼섬에 외국인 기자로서는 유일하게 상륙해 취재를 하다가 교통 사고로 부상을 입고 타이베이(臺北)로 후송됐으나, 아픈 몸을 이끌고 26일 다시 한번 진먼섬 상륙을 시도하다 동료 외국인 기자 여섯과 함께 종적이 끊겼다.최병우는 전남 목포 출신이다. 경기 중학과 일본 센다이시(仙台市)의 도호쿠(東北)제국대학에서 수학했다. 도쿄(東京)의 주일대표부에서 일하던 1950년 봄, 최병우는 한국은행 조사부장 장기영(張基榮)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이 만남이 그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장기영을 도와 개설한 한국은행 도쿄 지점에서 근무하던 최병우는 1952년 장기영이 조선일보 사장이 되면서 이 신문의 외신부장으로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두 해 뒤 장기영이 한국일보를 창간하자 그를 따라 태평로에서 안국동으로 일터를 옮겼다.

최병우의 기자 생활은 대여섯 해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이 길지 않은 세월을 터질 듯한 밀도로 채웠다. 그는 관훈 클럽 창설, 신문주간과 신문의 날(4월7일) 제정, 한국신문편집인협회의 결성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쉼 없이 공부하는 기자, 현장에 붙박여있는 기자의 삶을 모범적으로 실천해 보임으로써 후배 기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현장의 시작은 판문점이었고 끝은 대만해협이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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