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스의 노래는 떠난 연인에 대한 미움을 잠재운다. ‘화장을 고치고’에서는 옛 연인에게 “해 준 것 하나 없이 받기만 해 미안하다” 하고 ‘부탁해요’에서는 연인을 빼앗은 여자에게 “그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해 주라”고 한다.갑작스런 이별 앞에 냉정한 척 강한 척 하지도 않고 떠난 그의 잘못을 탓하지도 않는다. 다만 용서하고 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슬퍼하고 눈물짓는다. 참 바보 같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이 칼로 무 자르듯 어느 한 순간 잘려 나가지 않는 끈적끈적하고 질긴 것임을 경험해 본 이라면 누구나 공감한다.
새 노래 역시 그렇다. 스페니시 기타 소리가 이끄는 샹송풍 타이틀곡 ‘관계’에서 그는 여전히 착하디 착한 여자다. 이별 앞에서도 “사랑을 가르쳐 줘 고맙다” 한다. ‘날 여자로 만들어 준 너 그댈 정말 사랑했어요/ 아마 누굴 만나서 그와 사랑할 때도 니가 그리울거야’라고 사랑했던 추억을 소중히 할 뿐이다.
‘사랑이 두렵다’는 도무지 쿨한 사랑과는 거리가 먼 노래다. ‘가 붙잡지 않을게 내 걱정은 하지마/ 난 니가 시키는 대로 살아왔었으니까’라고 단호하게 이별을 받아들인 듯 하지만 ‘보고싶어 참다가 힘들면 가끔씩 전화할 지 몰라/ 내 목소리 듣기가 싫어도 옛정을 생각해 받아줘’라고 매달린다.
“사랑이 끝나도 ‘여기가 끝’이라고 금 긋듯 되나요. 한 동안은 밉고 또 원수 같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애잔한 느낌이 남잖아요.” 실제로는 어떨까. “옛사랑요? 순간순간 창 밖의 햇살에, 불어오는 바람에 문득 생각 나지 않나요. 잘못한 게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그래도 아름답게 느껴지잖아요.” 가수 데뷔 전 사귀었다는 남자친구에 대한 왁스의 감정도 그렇단다.
새 음반은 1, 2, 3집처럼 최준영_임기훈_신동우 트리오의 작업으로 짜여 있다. 얼굴 없는 가수로 시작해 1집에서 하지원이 2집은 신은경이 뮤직비디오를 통해 왁스를 대신 했다면 4집은 홍콩 배우 관지림이 음반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이제야 말이지만 “얼굴 없는 가수로 아예 방송에 안 나올 때는 기분이 참 이상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결과 지금 사랑 받고 있으니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새 노래 ‘관계’는 그 쓸쓸함의 진하기로 따진다면 전작보다는 약하다는 생각도 든다. “청승맞기로 치자면 사실 ‘사랑이 두렵다’가 더 하죠. 하지만 그 노래는 너무 ‘왁스풍’이어서 타이틀곡에서 밀렸어요”라고 말해 이미지 고수와 변신을 가운데 둔 그의 갈등을 드러낸다.
“항상 떠난 사람에 대한 노래만 불렀는데 다음에는 사랑하는 기쁜 감정을 노래하고 싶다”는 왁스. 그의 노래가 옛 사랑의 기억으로 가끔 황량한 가을 남녀의 마음을 얼마나 흔들어 놓을 지 궁금하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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