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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진실로 美 돕는다면

입력
2003.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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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추가 파병문제로 우리 사회가 또다시 양분되고 있다. 정치적 고려를 안 한다면 파병은 당연히 피해야 한다. 시작부터 걸프전처럼 세계가 동의한 전쟁도 아니고 미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수행된 명분 없는 전쟁이었다. 수렁에 빠진 미국을 위해 수천억의 비용과 인명피해를 감수해야 하고, 더구나 이슬람세계와 등 지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면, 또 그러고도 언제 수렁에서 헤어날지 알 수 없다면 파병은 고려조차 말아야 한다. 유엔 동의 하에 가더라도 순수한 유엔평화유지군이 아니고 미국주도의 다국적군이라면 더욱 그렇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 파병찬성 여론이 적지 않은 이유는 이 일로 혈맹적인 한미관계가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파병에 대한 심층분석은 제쳐놓고 한미관계 훼손여부를 놓고 다시 지난날의 여론 양분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사실 파병에 대한 찬반여부만 토론하는 것은 매우 소극적이다. 미국과 혈맹 관계인 한국은 마땅히 미국이 수렁에서 잘 빠져 나오도록 도와야 하지만 문제는 무엇이 진실로 미국을 돕는 방법인지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라크를 다녀온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파병은 미국을 돕는 방법이 아니다.

지금 미국의 가장 큰 잘못은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세우려는데 있다. 그래서 이라크 국민은 미국이 석유 때문에 이라크를 점령했다고 생각하고 온 국민이 단결해서 저항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결코 이라크 국민을 이길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라크는 더욱더 이슬람을 중심으로 단결하게 된다. 지금 이라크는 이슬람독재로 갈 가능성이 크다. 과거 이란에서 팔레비 독재가 무너진 후 민주주의로 가지 못하고 호메이니 독재로 간 것을 보아도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은 친미정권에 집착함으로써 오히려 그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미국은 목표를 민주국가 수립으로 바꿔야 한다. 미국을 반대하지만 이슬람독재도 원치 않는 이라크 시민들을 일깨워 민주세력으로 키워야 한다. 그런데 시민사회를 키우는 일은 오히려 한국과 같은 나라에게 맡겨야 한다. 이라크 국민도 한국을 대단히 좋아하고 한국도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시민단체가 전후 지원에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지난 27년 간의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시민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시민사회의 성숙을 이룩한 나라다. 독재에서 막 벗어난 이라크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라크에 가서 새마을운동을 전개하고, 민주교육에 힘을 쏟고, 시민운동을 키워, 이라크 시민사회를 활성화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전투병을 파견하여 미국의 하수인으로 낙인 찍히면 한국NGO들은 이라크의 시민사회를 키우는 일을 할 수 없다. 오히려 생명의 위험을 느껴 철수해야 한다.

민주정부가 미국의 목표가 되면 이라크 국민은 미국과 싸울 필요가 없어지고 오히려 자기들끼리 다투게 된다. 반미감정도 완화되고, 오히려 미국을 고마워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이것이 이라크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방법이다.

한국정부는 파병여부를 놓고 고심하는 소극적 태도를 지양하고 적극적으로 미국에게 역제안을 하고 미국의 입장을 바꾸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전후복구와 시민사회 활성화에 예산을 배정하고 전투병 대신 민간지원단을 이라크에 보내야 한다. 이 일이야말로 오랜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한 한국이 신념을 가지고 할 일이며 미국을 진심으로 돕는 방법이다.

서 경 석 목사 경실련 상임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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