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남편'이 무슨 뜻인지 외국인이 물어 온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원정출산'이라는 말을 어린 아이에게 설명하려면?
병역 문제도 있지만 "내 아이는 한국인으로 키우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단다.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과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에 관한 최근 젊은 부모들 기사를 접하며, 나는 엉뚱하게도 나라걱정이 아니라 "과연 나는 무엇을 물려받았는지" 되짚어 보게 되었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것을 글로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딸 부잣집 괄괄한 둘째 딸에서 갑자기 가부장적인 집안의 맏며느리가 되어 고된 시집살이를 해야 했던 평범한 대한민국 아줌마, 우리 어머니.
텔레비전을 보다가 정치 뉴스라도 나오면 "사람들이 내년 선거에서는 똑바로 된 선택을 해야 할텐데…"라고 혼잣말을 하시고, 태풍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건강하지도 못한 몸이라도 움직여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시다. 제대로 앞가림을 못하는 네 자식들 때문에 여전히 집안일을 손놓지 못하여 늘 바쁘시지만, 없는 시간을 내어 침침한 눈으로 하루 몇 시간 신문을 읽어 철없는 운동권 아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신다. 고등학교 때까지 톰 크루즈 같은 남자를 만나서 국제결혼을 하겠다던 '날라리' 둘째 딸이 그나마 세상을 둘러보는 사람이 된 것도, 촛불시위라도 있는 날이면 틀림없이 네 남매가 함께 광화문으로 나가는 것도, 어머니 영향이라고 하면 화내시려나.
결혼식 때를 제외하고는 화장 한 번 해본 적 없는 당신이지만, 맨 얼굴에 아무 것도 안 바르고 출근하는 딸에게 늘 화장하라고, 못생긴 코 때문에 인상이 나빠진다며 성형수술을 하라고 한 말씀 하신다. 그러나 정작 자랄 때에는 딸이 외모 때문에 기죽지 않고 다른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자랄 수 있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고, 덕분에 두 딸은 외모, 그리고 나아가 행복한 결혼까지도 모두 강박이나 의무가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이자 과정임을 배웠다.
잇따른 사업 실패로 남편은 언제나 집을 비우고 안정적인 수입이 드문 상태에서 거의 혼자 네 남매를 키워야 했지만, 늦게까지 고생시킨 막내까지 엄청난 선물로 여기고 항상 감사하셨다. 전세 보증금 정도도 없어 해마다 월세 집을 옮겨야 했지만, 그 때마다 남의 집이라는 생각 없이 가꾸면서 즐기는 법을 실천하면서, 집은 그저 살아가는 터전일 따름이라 가르치셨다.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후하셨고, 자선단체보다는 사회운동 모임을 후원하라는 자식들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역 환경단체와 자선단체의 지로 용지를 챙겨 다니신다.
또 자갈치 아지매 못지않은 노 대통령 열성 팬으로 지난 7개월간 새 정부가 겪은 어려움을 모두 당신 일처럼 속상해 하시지만, 내년 총선에서 지방선거처럼 2표를 찍을 수 있게 된다면 '한 표는 미래를 위해' 민주노동당에 찍으신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가 몇 달 전 동생을 방문하느라 난생 처음 미국에 갔다가 그랜드 캐년에서 한참을 우셨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좁은 땅 덩어리에서 아등바등 힘겹게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기특하고 불쌍하고, 또 한편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란다. 최근에는 이민 가겠다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했더니, 똑똑한 사람들이 다 가버리면 잘못된 세상은 누가 바꾸겠냐고 다시 한숨이시다.
몇 해 전 유행한 책 제목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모두 유치원에서 배웠다'처럼, 사실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다 어머니에게 배웠다고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해외 어학연수로 유창한 영어 실력을 만들어 주거나, 무거운 몸으로 '원정'하여 미국 국적을 얻어 준다 하더라도, 어느 누가 이보다 많은 것을 물려줄 수 있을까.
김 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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