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이라는 것이 지방에서는 서울 바라보고 서울에서는 강남이 좋다 하고, 강남만 가면 또 다겠습니까. 강남에서도 대치동이라고 하고 거기서도 끝나지 않아서 워싱턴 뉴욕 파리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어디까지 가면 만족하겠습니까. 이래서는 아무 것도 안됩니다. 결국 빠꾸 오라이를 해서 첫걸음으로 돌아와야 합니다."이신행 (61·사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벌써 9년째 새로운 학교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지금은 꿈이 실행 궤도에 접어들어 내년쯤 경북 상주와 경남 남해에 대안학교 '노마소이 학교'를 개교할 계획에 부풀어 있다.
그동안의 대안학교가 중·고등학교 중심이었다면 노마소이 학교는 대학형 대안학교이다. 물론 정규 인가를 받은 대학은 아니고 대학과정을 가르치는 2∼3년제 학교를 목표에 두고 있다. 학사 학위를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독학고시나 편입시험을 치르는 방안을 이끌어줄 계획이다.
이 학교를 한 군데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에나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서울의 본부에서는 커리큘럼을 제시하고 필요로 하면 기본 교양을 가르치는 강사를 파견하는 대신 나머지 교육은 지역민들이 스스로 꾸미는 대학이다. 지역민들이 만들어 지역 청소년들을 그 지역이 필요로 하는 전문가로 키워내는 교육을 한다. 한마디로 지역사회 소생을 위한 풀뿌리 운동인 셈이다. 그 때문에 지역주민이 학교를 세우는 일에도 직접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구상 자체는 9년전에 나왔으면서도 서서히 지역에서 토론모임을 해가며 분위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느라 학교 개교가 자꾸 늦춰지고 있다.
노마소이 학교의 첫번째 개교 장소로 두 곳이 선정된 이유는, 상주는 이 교수의 고향이자 그가 대학원생 때부터 크리스찬아카데미나 YMCA활동을 하는 현장으로서 꾸준히 찾아봤던 곳이기 때문이고 남해는 어느 지역보다도 지역운동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를 열기 위해 이 교수의 연구실이 2001년부터 지역의 지도자들과 심포지엄을 계속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적 여건은 사실 조선 때보다도 후퇴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각 지역마다 서당이 있고 지역의 교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국가가 빼앗아갔습니다. 국가가 빼앗아가서 제대로 하면 다행인데 서울 중심으로만 몰리거든요. 지역의 교육이 무너지니까 지역도 죽어나자빠질 수 밖에 없어요. 각 지역들이 자기 정체성을 갖고 사람을 키우고 그 사람들이 연결될 때 우리 사회 전체도 건전해지지 않겠습니까"라고 이 교수는 말한다.
이를 위해 노마소이 학교 교육과정은 대학의 인문사회 교양을 가르치는 부문과 지역의 정체성을 가르치는 부문으로 크게 나뉜다. 교수진도 대학의 인문사회 교양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기존 대학교수와 강사진 가운데서 선정하지만 정체성 교수는 그 지역의 전문가를 모신다는 입장이다. 특히 학감은 그 지역에서 존경받는 '어른'을 모셔서 학교의 정진적인 지주가 되게 할 생각이다.
전공은 시민·사회 운동과 지역 전공, 경영, 창작 전공 등으로 나눌 계획인데 일반적인 인문교양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수준과 교과목에 따르겠지만 지역 정체성은 농사와 조림, 어업 등 지역이 필요로 하는 과목을 지역에서 최고라는 현장의 사람을 교수로 받아들일 계획이다. 이 때문에 남해에서 선정된 교수진은 남해지역신문 편집국장 출신으로 노인복지사업을 하는 이와 생태운동에 관심 많은 감리교회 개척목사, 지역 역사연구가 등이 선정됐다.
이 교수의 제자로 인문교양 교수를 맡게 될 연세대 강사 이기호(39·평화포럼 사무총장)씨는 "오래 공부한 일본에 가보면 어느 지역에나 3∼4명씩 모여 벤쿄카이(硏究會)라는 공부모임을 만들고 이들이 점차 전문가를 모셔다가 강의를 듣고 마침내는 중국 황사 현장에 가보는 등 스터디투어를 하면서 시민 하나하나가 전문가로 성장한다. 이런 전문가들이 많기에 일본은 지역의 학문이 죽지 않는다"며 "노마소이를 통해 우수한 학생들이 서울로 몰려들기만 하는 것을 바로 잡을 뿐 아니라 지역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지역에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잡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마소이 학교의 캠퍼스는 지역에 널려있는 교회와 향교, 수많은 재실들이 담당한다. 상주의 캠퍼스로는 외서면 우산리 진양 정씨의 종가집 서원 건물 도존당(道存堂) 첫 순위로 꼽히고 있다. 진양 정씨 종가집이 바로 이 교수가 대학원생때부터 농촌봉사활동을 갈 때마다 거점으로 삼았던 집. 그만큼 지역에서 신망도 높다. 종손인 정춘목(37)씨는 이 교수가 학감 역할도 맡으라고 했지만 "인품이 모자라 고사했다"며 "좋은 일인만큼 집안의 시설은 다 쓰도록 해주겠다"고 말한다. 남해에서는 교회 건물이 캠퍼스로 거론되고 있다.
진작부터 정해진 것은 서울캠퍼스.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이화여대 공대 건물 옆에 있는 4층 건물, '체화당'( 華堂)이다. 체화당은 '산벚나무가 곱게 피어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형제들이 어울리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빚댄 표현이라고 한다. 원래 상주의 어느 재실 이름인데 이 교수가 그의 소유 건물 이름으로 삼은 뒤 이 공간을 바로 신촌 주민을 위한 '신촌 민회'와 노마소이 학교의 공간으로 공개했다. 현재는 주로 연세대학교의 학생들이 활용하고 있다.
또 하나의 캠퍼스는 지리산 왕시루봉에 있는 자연역사학교. 원래는 린튼 가문의 여름 휴양지였던 이곳은 방학중 필수 과목인 교수와 학생들의 공동체 활동과 학생들의 봄·가을 훈련과 토론회, 학생들의 지리산 종주 거점이자 부정기적인 주말캠퍼스로 활용된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교육을 위해 활용할 시설들이 널려있다. 이 것들에 숨결을 불어넣어서 교육의 공간으로 만들 이상이 없었을 뿐"이라며 "노마소이 학교의 개념이 모든 지역민들에게 지역을 살리는 교육에 발벗고 나서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 "노마소이"란
노마소이 학교에서는 '노마·소·이 학교'로 표기한다. 이 이름은 이신행 교수가 존경하는 네 사람의 교육관련인사 이름을 줄인 것이다. 노는 중국의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인 루쉰(노신, 魯迅), 마는 일본의 기업가로 사설교육기관을 세운 마쓰시다(松下), 소는 미국의 사상가인 소로, 이는 우리나라의 항일운동가이자 교육자인 이상재 선생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 교수는 "혁명 중국의 격랑 아래서 중국 현대문학을 연 루쉰, 산업사회 일본에 정신적 기조를 다진 마쓰시다 고노스케, 기존권위와 번거로운 사회적 타성을 끊고 인간의 삶을 그 진면목에서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식민지적 질곡 아래서 종교와 교육을 바탕으로 새 조직운동을 시작하고 이를 통하여 새 시대와 사회에 대비하고자 했던 이상재"라고 네 사람의 특징을 규정짓고 "근대와 현대를 가르는 가파른 언덕 위에 선 동아시아인으로서 지나간 역사에 이어질 새로운 역사를 내다본 이 네 사람의 혜안과 선각자적 삶이 2000년대를 다짐하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교과서적 자원과 인격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교명으로 삼게 됐다"고 설명했다.
● 노마소이의 모델 美 "딥스프링스 컬리지"
노마소이 학교가 학교 커리큘럼을 짤 때 가장 많이 참조한 대학은 미국의 딥스프링스 컬리지이다. 라스베이거스 인근에 있는 이 대학은 비록 2년제이지만 학생들에게 '학문' '노동' '자기 통제'라는 세가지 목표를 교육에 실천, 지행합일하는 엘리트를 키워내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전교생이 불과 250명 남짓이며 교수 대 학생 비율이 4대 1. 수업 역시 4명이 한 반을 구성해서 세미나식으로 전개하므로 철처하게 공부를 준비해야 한다.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금요일마다 열리는 학생 자치회가 소소한 일부터 큰 일까지 모두 결정하므로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사는 법을 배운다. 교수들이 도제식으로 학생들의 진로를 꾸준히 보살펴 준다. 수업과목은 다양하지만 자기만의 생각을 갖고 그것을 표현하는 법을 가장 중시해서 '말하는 법'과 '작문'을 필수 과목으로 거쳐야 한다.
특히 노동을 강조해 식사 빨래는 물론 학교 주변의 농장일을 학생들이 직접 한다. 해뜨기 전이면 일어나 소젖을 짜고 여물을 주는 것도 학생들의 일이고 아침과 점심 사이에 두어 과목의 수업이 끝나면 저녁 먹기까지는 건초를 거두거나 건물 관리, 수로 정비를 맡는다.
입학 시험은 에세이를 6편 쓰는 것인데 대학입학능력시험(SAT)에서 1,400∼1,500점(만점은 1,600점) 이상을 맞는 학생들이 들어온다고 한다. 졸업 후에는 아이비리그로 편입하는 학생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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