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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살인마와 사랑에 빠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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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살인마와 사랑에 빠졌다고?

입력
200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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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를 냈다며 벌로 엉덩이를 때리는 직장상사,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잔인한 살인범. '세크리터리'와 '헤드 오버 힐스'에서 주인공 여성이 각각 사귀는 남자의 모습이다. 26일 개봉되는 두 작품은 낯선 시선으로 사랑을 뒤집어 보는 색다른 로맨틱 코미디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세크리터리'(Secretary,감독 스티븐 쉐인버그·사진 위)는 변태에 대한 편견을 즐겁게 뒤집은 영화다. 금기 밖으로 밀려나 있던 사랑에 합법적 지위를 부여했다고나 할까. 자해를 통해서나 위안 받는 소심한 타이피스트와 부끄러움 때문에 도착적 관계에 집착하는 변호사가 이상한 방식의 소통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만난다는 이야기. 자신의 사랑의 방식에 대해 죄의식을 느꼈던 이들이라면 장마 끝의 햇살처럼 반가울 것이다.

사랑에 대해 눈 씻고 다시 보게 할만큼 발칙하고 도발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며, 이야기를 끌고 가는 각본의 힘이 대단하다. 올해 개봉한 외화 가운데 페도르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와 더불어 가장 뛰어난 로맨스 영화로 꼽을 만하다. 리 할로웨이(매기 질렌홀)가 오탈자를 내자 엉덩이를 때리며 혼내는 직장상사이자 변호사 그레이(제임스 스페이더), 엉덩이 맞는 게 그리워 자신이 낸 오탈자를 보며 황홀해 하는 리의 캐릭터는 누구라도 홀릴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다.

영화의 가장 큰 즐거움은 다리에 반창고 투성이에 산발한 머리, 자신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리가 그레이를 사랑하면서 차츰 관능적이고 성숙한 여인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이다. 자해용 도구 상자를 가지고 다니며 괴로울 때마다 허벅지에 상처를 내거나, 자리를 뜨지 말라는 그레이의 말을 지키느라 오줌을 지리는 모습은 결코 잊기 어려운 장면이다. 매기 질렌홀의 꾸미지 않은 요염함,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정열을 서서히 폭발시키는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남성 호르몬이 모자라는 듯한 따분한 표정, 그럼에도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여성의 마음을 뒤흔드는 제임스 스페이더의 카리스마도 독특하다. '크래쉬'(1996)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1989)에서 지적인 외모 뒤에 엽기적인 취향을 숨겨둔 연기를 선보였던 그답다. 2002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

알프레드 히치코크 감독의 '이창' 스타일로 '섹스 앤 시티'를 만든다면 어떨까. 자기 스타일을 지겹게 반복하던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가 새로워졌다. 스릴러와 액션을 버무린 '헤드 오버 힐스'(Head Over Heels, 감독 마크 워터스·사진 아래)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춘 고급스럽고 활기찬 작품이다.

르네상스 회화 복원 전문가인 아만다(모니카 포터)는 같은 동네에 사는 짐(프레디 프린츠 주니어)을 만났다가 신체적 이상 반응을 발견한다. 말을 더듬거나 다리가 풀리는 이 사랑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그는 동거하는 모델들과 더불어 짐에 대한 연구에 들어간다. 망원경으로 짐의 집을 엿보던 아만다는 짐이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고 현기증을 느낀다.

아만다 마음 속에선 짐에 대한 의심과 사랑이 전쟁을 벌이고, 이 전쟁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깔끔한 대사,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인 티치아노의 그림을 살짝 끼워넣는 재치, 명품으로 치장한 모델을 훔쳐보는 재미 등 곁가지도 훌륭하지만 섹시한 주연 배우들의 품격 넘치는 연기도 즐길 만하다. 영화제목은 사랑에 홀딱 빠졌다는 뜻.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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