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만화가들은 10년에 히트작 하나 내면 성공한 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30년 간 창작한 만화 대부분이 화제작이 됐고, 영화나 TV드라마로 리메이크되는 등 늘 '인기 상종가'를 구가한 중견만화가 방학기(59)가 그 주인공이다.1974년부터 주간잡지 선데이서울에 연재했던 '애사당 홍도' '바리데기' '임꺽정' '창부타령' '기생 언년이' '데카메론'을 비롯, 1980년대에 시작된 스포츠서울 연재만화 '감격시대' '청산별곡' '다모 남순이' '바람의 파이터' '바람의 아들' '피와 꽃' '역도산 일대기'등을 잇따라 냈다. 또 90년대 이후 스포츠동아에 연재한 '거미춤' '꽃점이' 등은 모두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일본에도 그의 명성이 알려져 1999년에는 인기정상 주간 대중잡지인 '호세키(寶石)'에 그의 만화 '한국 우키요에(浮世繪·풍속화)'가 연재되기도 했다. 서울 홍제동의 자택에는 요즘도 일본 여성 팬들이 단체로 몰려오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얼마 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여성수사관 '채옥'의 이야기를 담은 TV드라마 '다모'가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의 원작이 방학기의 '다모'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말 영화화가 결정된 일본 극진공수도 창시자 최배달의 무술인생 이야기 '바람의 파이터'도 그의 만화가 원작이다. 이 영화는 아예 방학기가 시나리오 집필과 제작 총지휘까지를 맡아 화제가 됐다.
방학기 만화의 꾸준한 히트 행진 비결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그림체다. 미술대학 출신답게 탄탄한 데생 실력이 등장인물의 동작묘사를 실감나게 재현한다. '다이내믹한 만화'의 진수를 만끽하게 한다. 시대극화나 권법 소재 만화에서 방학기 그림의 리얼리즘은 우리 만화계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둘째는 스토리구성 단계에서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철저한 고증과 작품연구로 만화 보는 재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그는 작품을 시작할 때면 으레 도서관이나 신문사 자료실 등에서 몇 개월씩 자료를 뒤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지막으로는, 만화 속에 흠씬 배어나는 '짙은 사람냄새'다. 그는 "마산 시장통에서 성장한 탓인지, 하층 서민에 대한 따스한 사랑이 내 모든 만화작품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경남 마산은 옛날부터 영남의 예향(藝鄕)으로 이름 높던 곳이다. 마산시청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그래서 마산 출신 문화예술인들을 기리는 '마의 예술가들'이라는 코너가 있다. 이 코너에는 노산 이은상, 천상병, 조두남 등과 함께 방학기의 이름도 자리를 잡고 있다. 그를 소개하는 글은 이렇다. "방학기가 처음으로 그림을 그린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이다. 6·25때 진동으로 피난을 갔다가 아군과 적군의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인민군과 따발총, 탱크 등을 그린 것이 그림의 시작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겪었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작품 속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요즘도 그는 서울에서 열리는 마산월영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면 고향 이야기들을 실타래처럼 풀어내길 좋아한다고 한다."
/손상익·만화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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