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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머리 감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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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머리 감기 좋은 날

입력
200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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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하지 않고 사업 구상만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내 주변에도 한 명 있는데 그가 내놓은 구상 중에 꽤 쓸만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샴푸방이다. 왜 가끔 어떤 날은, 문득 점심을 먹다가, 회사일을 하다가, 그저 머리만 감고 싶은 날이 있지 않은가. 사우나는 거창하고 머리 자를 때는 아직 안 되었고 그저 시원한 물에 머리 한 번 감으면 상쾌해질 것 같은 날. 어쩌다 아침에 좀 늦잠을 자거나 하면 머리 감을 시간도 없이 그냥 뛰쳐나오게 되는데 그런 날은 하루 종일 뭔가 좀 찜찜하다.그런 사람들을 위해 그가 고안한 것이 샴푸방이었다. 생긴 것은 미용실 비슷하게 생겼는데 가위나 뭐 그런 것은 없고 단지 허연 팔뚝을 드러낸 직원들만 기다리고 있다가 손님들이 들어오면 눕혀놓고 북북, 머리를 감아 주는 것이다. 어쩐지 풍경이 옛날 빨래터 비슷할 것 같다. 머리를 다 감은 손님들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거나 대충 수건으로 물기만 말리고 밖으로 나가 볼일을 계속 보는 것이다. 내가 듣기에도 꽤 그럴 듯한 구상이었는데 이상하게 10년이 다 되도록 샴푸방 비슷한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이미 가게(사실은 프랜차이즈) 이름도 정해놓았다. "머리 감기 좋은 날".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상쾌한 업종의 등장을 새삼 고대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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