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許丁戊·48·용인축구센터 총감독) 전 축구대표팀 감독은 이회택(李會澤·57·프로축구 전남) 감독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젊은 시절 국가대표선수의 자리를 만들어준(?) 사람, 축구를 떠나 있던 자신을 다시 축구계로 끌어넣은 사람, 그리고 축구에 대한 열정과 무욕(無慾)의 자세로 자신의 축구인생 철학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바로 이 감독이기 때문이다.1989년 1월 허씨는 당시 90월드컵대표팀 사령탑이던 이 감독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이 감독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잘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하얏트 호텔에서 만난 이 감독은 대뜸 대표팀 트레이너 자리를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섣불리 응낙할 수 없었다. 언젠가 지도자로 축구계에 복귀할 계획이었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86년 월드컵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시작한 사업도 때마침 자리를 잡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트레이너 후보에 대한) 선수단 투표를 했는데 선수들이 다 너를 원하더라"는 말에 마음을 돌렸다. 이 감독 덕에 축구계 복귀가 계획보다 훨씬 빨라져 버린 것이다.
지도자로서의 첫 출발은 그리 좋지 않았다. 90월드컵 본선에서 성적 부진으로 온갖 비난을 뒤집어쓰고 대표팀에서 물러난 이 감독의 모습을 보고 축구계를 떠나 다시 사업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 해 10월 이 감독이 소속팀인 프로축구 포항의 코치로 불렀다. 이미 축구에 대한 열정에 불이 붙은 그로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단 한가지 제안을 했다. "포항팀이 성적을 못 내는 것은 선수들의 단합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제게 선수들을 정리할 권한을 주신다면 가겠습니다."
물론 이 감독의 답은 "OK"였다. 축구에 대한 두 사람의 열정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둘은 기회가 되는 대로 브라질, 러시아 등 축구선진국을 찾아 그곳의 지도자들에게 전술과 훈련방법에 대해 배웠다. 팀의 경기가 끝나면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놓고 전술 논쟁을 벌이곤 했다. 논쟁이 하도 격해 어떤 때는 이 감독이 "야, 내가 감독이야"라며 핀잔 줄 때도 있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콤비는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고 2년 만에 우승을 일구어 낸다.
여기서 이 감독은 깜짝 결정을 내린다. 우승하면 향후 2∼3년은 자리를 보장 받을 수 있는데도 "능력 있는 후배가 축구계를 이끌어야 한다"며 미련 없이 자신의 자리를 허씨에게 물려주고 은퇴한 것이다. 자리 지키기에 연연하던 당시 프로 축구계에서 이 감독의 아름다운 결단은 큰 평가를 받았다.
세월이 흘러 98년 10월. 전남팀으로 자리를 옮긴 허 감독이 계약 만료가 되어 감독직을 떠나게 됐다. 그의 후임으로 많은 후보자들이 거론됐다. 이때 허 감독이 팀의 구단주를 찾아가 이회택 감독을 추천한다. 이 감독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사심 없는 마음이라면 자신이 못다 이룬 우승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결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축구에 관한한 그는 후배든 선배든 누구의 말이라도 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귀가 얇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축구에 대해서 그의 마음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배움에의 열정과 무욕, 그리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바른말을 하는 용기는 후배들이 배워야 할 자세인 것이죠."
허씨는 또 이 감독과의 인연을 이렇게 정리한다. "연세대 1학년 때인 74년 10월 처음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됐죠. 바로 이회택 감독이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탈락, 추가 선발된 것이죠. 우연이지만 선수로서 내가 빛을 보게 된 것은 이 감독님 덕분이죠. 지나고 나니 나의 축구인생을 그가 준비해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인가요?"
/유승근 기자 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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