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회복여부는 이제 환율에 달렸다.' 선진국의 원화 절상(切上) 압력과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 유입 등으로 원·달러 환율 1,170원 선이 붕괴되면서 유일한 성장엔진인 수출마저 타격을 받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연말 환율 1,100∼1,150원 전망
21일 재정경제부 등에 따르면 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9원 떨어진 1,168.0원으로 마감, 1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당국은 연일 직·간접적인 시장개입에 나서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내년까지 추세적인 하락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의 환율 하락세는 전세계적인 달러 약세 일본 엔화의 강세 외국인 주식투자에 따른 달러 공급 증가 등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삼성경제연구소와 대우증권은 연말 환율이 각각 1,150원, 1,120원 선까지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달러 약세 추세에다 미국의 압력 등을 감안할 때 당국의 시장개입으로 환율 하락을 막기엔 한계가 있다"며 "북핵 등 돌출 변수만 없다면 내년까지 원화 강세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IMF 총회 '환율 압력'거셀 듯
선진국의 환율 압력도 거세다. 미국은 23일부터 두바이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서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4개국의 환율조작 시정을 강력 촉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행정부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아시아 통화의 가치 절하로 경쟁력 저하를 호소하고 있는 미 제조업체들의 압력을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다.
유럽연합(EU) 재무장관들도 최근 이탈리아에서 회담을 갖고 두바이 회의 때 중국과 인접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환율 불균형'을 완화토록 압력을 행사하기로 합의했다. 유로화 가치가 지난해 달러 대비 15%가량 상승한 반면, 일본 엔화와 한국 원화 가치의 절상폭은 절반 정도 수준에 머물러 대외수출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는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해 환율 하락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재경부 고위관계자는 "내수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원화 절상으로 수출마저 타격을 입을 경우 우리 경제는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며 "급격한 환율변동을 막기 위한 미세 조정은 어느 나라나 취하는 환율정책이며, 우리는 그 정도가 심한 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외평채 발행잔액 2조8,000억 불과
하지만 외환당국의 시장개입에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6∼7월 환율 방어를 위해 외평채를 집중 발행하면서 당초 발행한도 5조원을 거의 소진, 국회가 7월 중순 4조원 증액 동의안을 통과시켜 9조원으로 늘어난 상태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실탄'은 2조8,000억원에 불과하다. 당국이 원화를 흡수하기 위해 발행하는 통화안정증권도 발행 잔액이 사상 처음 100조원을 넘어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책임연구원은 "내년도 우리 경제의 최대 복병은 환율"이라며 "작년과 비교할 때 8월 말 현재 원화 절상률은 6.1%로 대만(1.1%)이나 중국·말레이시아(0.0%)보다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이 최근 거래소 상장기업 50개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원·달러 환율이 10% 떨어지면 전체 수출매출액은 5.1% 포인트 감소하고 경상이익률은 3% 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 연구원은 "환율 하락이 지속될 경우 기업들이 채산성 악화를 견디지 못해 수출증가세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며 "내년 성장률이 5.0% 전후로 회복된다고 가정해도 원화 절상을 감안하면, 성장률 만큼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우려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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