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탁 지음 동아일보사 발행 1만2,000원"신분, 나이, 학식의 높낮이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은 리비도에 휘둘린다. 청와대 대통령도, 이웃집 아저씨도 리비도 앞에서는 무릎을 끓는다. 만물의 영장이 아메바로 전락한다."
'리비도'는 프로이트의 전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성적 충동'을 가리킨다. 광고쟁이 김홍탁(제일기획 크리에이트비 디렉터)의 광고평론집 '광고, 리비도를 만나다'에서 이 대목을 읽으면서 통쾌함을 느낀다. 얼마나 공평한가. 한편으로는 뜨끔하다. 들켜버렸다는 쑥스러움에.
이 책은 '광고는 문화'라는 관점에서, 에로티시즘 광고를 통해 우리 시대 성 문화를 읽어낸다. 분석의 텍스트는 해외 인쇄광고 144편이다. 한국 광고에서는 성을 전면에 내세운 것을 찾기 힘들어서 그랬다고 한다. 지은이는 에로티시즘 광고에서 성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날카로운 눈길로 뜯어봄으로써 감춰진 욕망의 적나라한 현실을 들춰낸다.
전체 6장 34꼭지의 글은 몸과 섹스의 정체성·에이즈·페미니즘·성폭력·자위·불륜·오르가슴 등 성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날렵한 발걸음으로 섭렵하고 있다. 지은이는 명쾌하고 예리한 분석을 인문학적 교양과 결합시켜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광고들은 더러 아찔할 만큼 매혹적이고, 낯뜨거울 만큼 아슬아슬하다. 남녀의 성기와 음모, 섹스 자세까지 노골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드러낸다.
책 표지부터가 도발적이다. 아무런 치장 없이 얌전한 분홍 바탕에 세로로 조그맣게 박혀 있는 이탈리아 핸드백 회사의 광고 이미지는 여성의 성기처럼 보인다. 화들짝 놀라서 다른 종이로 얼른 덮어버려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시라. 이 책은 국내 최초로 나온 본격적 에로티시즘 광고비평서로서, 우아하고 기품 있는 면모를 과시하고 있으므로.
본문에 소개된 광고 중에도 특히 흥미로운 것은 에이즈나 성폭력 예방을 다룬 외국 공익광고의 대담하다 못해 도발적인 표현 방식이다. 프랑스의 에이즈 예방 광고는 남성의 성기 끝에 낼름거리는 뱀의 혀와 매장용 관 모양으로 다듬어진 여성의 음모를 보여줌으로써 섹스가 자칫 죽음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성폭력 예방 광고는 엉덩이가 드러나는 원피스 차림 여자의 뒷모습, 시선이 모이는 곳에 '나를 강간하라고 당신을 유혹하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글귀를 인쇄함으로써 흐트러진 여자가 당한다는, 강간에 대한 그릇된 통념에 유죄를 선고한다. 지은이의 지적대로 '너무 예쁜 공익광고만 보아온' 한국인들에겐 충격적으로 다가올 그런 이미지를 보면서, 광고가 한 사회의 유연함과 정직성을 보여주는 또다른 창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반성한다. 부자연스러움을 감수하게 만드는 위선이나 돌처럼 굳어버린 도덕의 폭력으로부터 우리 사회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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