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땅 하늘은 멀더라도…."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것 같다. 운동장에 집결한 학생들이 애국가와 '맹호부대' 노래 등 월남참전가를 신나게 부른 뒤 조회가 시작됐다. 교장선생님의 훈화에 이어 한 학년 선배가 교단에 불려 올라갔다.
"이역만리 월남 땅에서 공산군과 싸우다 산화한 우리의 자랑스런 선배를 위해 묵념합시다." 불과 몇 달 전 성대한 환송식과 함께 월남으로 떠났던 그 선배의 형이 전사했다는 위로의 말과 함께 조그만 선물이 주어졌다. 자리에 돌아온 선배는 연단에서 받아 온 수건을 질경이가 무성한 운동장에 내동댕이 친 후 발로 짓뭉개며 눈물을 떨구었다.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는 문제를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러운 요즘, 불현듯 30여년전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이라크 파병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겁다. 파병 찬성론자들은 미국이라는 유일 수퍼파워가 지배하는 국제질서에 적응하기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내세운다. 또 북한 핵 문제 등에 미국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 만큼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전략적으로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편다. 이밖에도 이라크 전후 복구과정에서 우리의 몫을 찾기 위한 사전 포석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파병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은 의료·공병을 주축으로 한 지난번 1차 파병 때와는 달리 전투병력이라는 점이 지적된다. 지난번에는 인도적 차원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총을 들고 이라크인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이라크 현지 사정은 거의 '제2의 베트남전'으로 치닫기 일보직전의 혼돈상태다. 이라크 곳곳에서는 잇달아 자살폭탄공격이 발생하고 있다. 정작 1달 여를 끈 이라크전에서 사망한 미군이 137명인 데 비해 부시 미 대통령이 승전 선언을 한 이후에는 170여명의 미군이 숨졌다.
또한 전쟁의 명분이 터무니 없는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개전당시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는데다 9·11테러의 배후 지원세력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 곳곳을 샅샅이 뒤지고도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아울러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자인했듯 후세인이 9·11테러의 배후라는 혐의사실도 밝혀내지 못했다. 한마디로 군산복합체의 절대적 지원으로 정권을 잡은 부시 행정부가 제멋대로 일으킨 부도덕한 전쟁이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난 셈이다.
이 같은 양론 속에서 우리 정부마저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간에도 견해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여야 국회의원들도 선뜻 속내를 내비치지 못 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 이 와중에 부시 대통령이 우리 외교부 장관을 접견하는 파격적 예우를 해주고 방미한 야당대표를 환대해주는 등 미국은 속히 파병결정을 내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진퇴양난에 처한 형국인 노무현 대통령마저도 "지금 답하기 어렵다"며 결단을 미루고 있다.
이번 파병현안은 출범이후 숱한 어려움 속에 허덕여온 참여정부에게 난제중의 난제로 보인다. 그러나 파병문제가 자꾸 미룬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게 정부의 책무다. 정부와 여당이 나서서 칼을 빼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일부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국민투표에 부치는 게 어떨까 싶다. 노 대통령은 17일 "이번 파병결정의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은 옳고 그름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민의 인식을 정확히 읽어낼 방안으로는 국민투표이상 좋은 방안이 없다는 생각이다.
윤 승 용 사회1부장 syy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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