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 선거가 갈수록 가관이다. 미국 주 선거 사상 최대의 정치 쇼로 불릴 만큼 극적 요소가 많은 이번 선거에 소송전이 더해지면서 더욱 흥미를 돋우고 있다.15일 연방 제9순회항소법원이 다음달 7일 투표를 강행하라는 하급심 판결을 뒤집으면서 제시한 이유의 요지는 구식 천공카드 투개표 시스템의 오류 가능성이다. 투표지에 펀치기로 구멍을 뚫어 지지 후보를 표시하는 이 방식을 사용할 경우 2000년 대통령 선거 당시 플로리다주 사례처럼 천공 부스러기로 인한 오류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때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도 아직도 구식 천공카드를 투표에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지만 항소법원의 재판부가 과거 민주당 정부에 의해 임명된 판사 3명으로 구성됐다는 사실은 더욱 관전자의 시선을 끈다.
판결이 내려진 뒤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와 민주당이 '명 판결'이라고 환영하고 있는 반면 주지사 퇴출을 외치는 공화당측은 '불공정 게임'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법관 11명 모두가 참여하는 재심 문제가 거론되고, 각 당을 지지하는 시민단체가 나서 재심 불가와 찬성을 주장하는 등 혼란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이런 대립의 예견된 수순이다.
이쯤이면 하급심과 상급심의 판결이 엇갈리고, 재판부 구성원이 어느 당에 의해 지명됐느냐에 따라 판결 성향이 달랐던 지난 대선 전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조지 W 부시 후보와 앨 고어 후보간의 소송전 양상과 비슷한 회오리를 몰고 올 것이라는 경고음도 들린다.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법률적 다툼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유권자의 12% 서명만 있으면 주지사 소환을 위한 주민투표 실시가 가능한 캘리포니아 선거 제도를 정치적 목적에 활용한 쪽은 후임 당선을 노린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이었다. 서명 작업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 부은 당사자는 출마를 포기했지만 돈으로 선출직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제도상의 맹점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한 평론가는 "주지사의 행정 책임을 심판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의 본래 의미는 퇴색하고 정파적 이해만 횡행하고 있다"고 이번 선거 양상을 혹평했다. 직접 민주주의의 예기치 않은 결과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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