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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대통령의 고민

입력
2003.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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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택시를 탄 나의 친구에게 기사가 대뜸 "이라크에 전투병을 보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하고 묻더라고 했다. 자신을 베트남전 참전용사라고 밝힌 이 기사는 이라크에 전투병 파병을 반대하는 자신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지 승객을 붙잡고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했다.이처럼 전투병 파병에 정서적으로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전후 이라크는 두 번의 대규모 자살테러가 있었고, 전시보다 전후 더 많은 미군이 죽어 나가고 있다. 역사 문화적으로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는 아랍의 위험한 지역에 젊은이를 보낸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이 생긴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 논쟁 등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팽배해 있는 상황도 파병에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지난 봄 우리는 600여명 규모의 의료 및 공병부대를 파병하는 문제를 갖고 혹독한 찬반논쟁과 반미정서에 휘말려 든 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번 미국의 이라크 파병요구는 충격이자 가장 어려운 국가현안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파병요구가 보도된 후 우리 사회가 보이는 자세에서 지난번 논쟁 때 보다 성숙된 일면을 느낄 수 있다. 그 실례의 하나가 인터넷 여론조사 결과다. 전투병 파병에 반대하는 사람이 절대 다수지만,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른 유엔의 다국적군 형식일 경우 찬반은 비등했다. 인터넷 여론조사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의미 있는 반응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이성적인 판단의 기준을 찾아 방황하는 심리적 갈등이랄 수도 있고, 처한 나라의 어려운 상황을 감정이나 도덕성 기준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는 정치적 현실을 생각하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

부시정부의 이라크 전투병 파병요청은 우리 국민에게 과거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던 국제정치의 냉혹한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동맹관계의 어려운 측면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한국방위만을 책임진 미국의 동맹지위에 익숙해져 왔으나, 이번에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판단과 선택의 기로에 선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만약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 대로 파병결정이 이루어진다면 국제관계를 보는 우리 국민의 인식지평은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중동에 개입해왔던 영국 같은 나라와는 다르다. 우리 병사가 아랍 테러리스트의 희생이 될 수도 있고 그런 희생이 생겼을 경우 국민이 느낄 충격은 전혀 새로운 것이다. 막대한 파병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일도 새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휴전선 방어에만 전념하며, 체면 치레의 소규모 유엔평화유지군에 참가하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일이다. 이런 새로운 환경은 분명히 국내정치와 상호영향을 주고 받으며 새로운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대통령이 말했듯이 파병하든 하지 않든 그 후유증은 클 것이다. 어느 당 대표가 표현했듯이 정말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과 같다. 청와대 보좌진이 기자들에게 파병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게 여론 테스트용인지 사견인지도 분명치 않다. 대통령은 "국민적 인식이 판단기준"이라고 말했다. 여론의 추이를 보겠다는 뜻인 것 같다.

어려운 파병문제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큰 변수의 하나인 유엔안보리 결의안의 추진과정도 보아야 하고, 이라크 현지사정도 정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미국의 의사를 정확히 타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이 직접 담판을 해야 할 일도 생길지 모른다. 그래서 공개 못할 일도 있고 여론을 떠 볼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여론에만 내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며 결국에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도 있다. 여론은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국가 안위를 책임진 대통령이 직관과 경륜과 시스템을 통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진중히 풀어나가야 한다. 대통령은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 위해 선출된 자리다.

김 수 종 수석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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