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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이상한 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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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이상한 멀미

입력
2003.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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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를 보면 강호를 떠돌던 검객들이 서로 내공을 겨루는 장면이 나온다. "어허, 애숭이가 겁이 없구나. 쉭쉭쉭." 고수들은 몇 합 겨뤄보지 않고도 서로의 실력을 안다. 평화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의 세계에는 그런 평화가 없다. 칼의 세계야 실수를 용납하지 않지만 예술이야 어디 그런가. '액면'을 보여주기도 어렵고, 봐도 수긍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현대 예술은 더욱 그렇다. 평화는 가능하지 않다. '네가 나보다 잘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니 날마다 전쟁이다. 전쟁의 무기로는 이른바 '작가적 거짓말'이 동원된다. '작가적 거짓말'의 특징은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경주의 고분군에 가면 가끔 신라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같은 말은, "저는 가끔 우주의 저 높은 차원에서 다른 존재들과 교감하고 있어요" 같은 말에 약간 밀린다. "나무들이 말을 걸어와요." "뭐라고요?" "아프다고들 해요." 이쯤 되면 예술과 반쯤 미친 것과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러나 내가 들었던 가장 놀라운 '작가적 거짓말'은 이것이다. "늘 어지러워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지구가 자전하는 것이 느껴져요."

어쩌겠는가. 느낀다는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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