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관객 510만명을 불러 모으며 비평적 찬사와 상업적 성공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 1980년대의 공기가 묻어나는 정교한 미술과 송강호·김상경의 혼신을 다한 연기, 공분을 서서히 불러일으키는 봉준호 감독의 치밀한 연출이 결합된 수작이다.토박이 박두만(송강호)과 서울에서 온 서태윤(김상경) 형사를 전면에 내세워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도 진진하지만, 1980년대의 혼란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화면의 힘도 어지간하다.
과학적 수사를 강조하는 서울 형사와 윽박지르기로 일관하던 시골 형사가 사건이 진행될수록 수사 방법이 엇비슷해진다는 블랙코미디적 설정에 데모대를 진압하느라 정작 피해자를 보호할 수 없었던 경찰의 아픈 시대상을 그려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당장 뛰쳐일어나 범인을 잡고 싶게 만들 만큼 감정을 건드리는 연출이 영리하다. 의뭉스러우면서도 뻔뻔스런 용의자 박현규(박해일)를 잡힐 듯 잡히지 않게 그리고, 관객의 감정을 형사들에게 이입시켜 나가는 솜씨가 얄미울 정도다.
귀에 달라붙는 생생한 구어체 대사, 안티푸라민을 비롯한 꼼꼼한 소품, 나무에 링거병을 걸고 주사를 맞는 박 형사 커플의 애틋함까지 80년대가 오롯하게 살아있다. 15세가.
봉준호 감독이 장편 데뷔 전에 만든 단편 '지리멸렬'(1994)을 보면 그의 풍자정신과 사회에 대한 예민한 촉수를 눈치챌 수 있다.
'플란다스의 개'(2000)는 '풍자의 영상사회학자'로 부를만한 봉준호 감독의 첫 장편영화. 평범한 일상 속에 감춰진 평범하지 않은 인간의 욕망과 관계를 신선하게 들춰낸 뛰어난 데뷔작이다.
이야기의 외관은 강아지 실종 사건. 강아지 실종을 둘러싸고 시간강사 윤주(이성재)와 그의 아내(김호정), 아파트 관리소 직원 현남(배두나)과 경비원이 예상치 못한 관계를 맺어나간다는 내용. 강아지가 너무나 신경 쓰인 나머지 강아지를 죽이려는 시간강사, 강아지를 잡아먹으려는 경비원, 실종 강아지를 찾으려 벽보를 붙이고 다니는 현남이 얽혀 엉뚱한 추적극을 벌인다.
그러나 강아지 추적극보다 강아지를 둘러싼 저마다의 속내를 드러내는 에피소드가 더 흥미롭다. 아파트 옥상에서 치어리더들이 환호하는 장면, 100m 길이 휴지를 풀어 실제 길이를 재보는 장면 등 상식을 깨는 만화 같은 상상력이 기발하다.
'좀팽이' 같은 교수 사회에 대한 풍자도 꽤나 유쾌하다. '살인의 추억'에서 열연한 김뢰하와 변희봉이 어떤 연기를 펼쳤는지 살펴보는 것도 잔재미. 12세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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