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17일 광주·전남지역 언론인과의 인터뷰에서 "주변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있어 결정하기 어렵다"며 이례적으로 정부 내 이견을 강조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이에 앞서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은 "굳이 전투병을 파병할 필요가 있느냐"며 "파병하지 않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해 파병반대론의 총대를 멨다.이날까지 정부 내 외교·국방라인의 기류는 전반적으로 '파병 긍정 검토' 또는 '파병 불가피'에 가까웠다. 청와대와 국방부의 관계자들은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연계시키면서 파병의 당위성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파병 반대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면서 자칫 정부와 국민여론이 파병 찬반으로 갈릴지도 모를 상황을 맞았다.
하지만 이날 노 대통령과 유 수석의 발언으로 정부 내에는 '적극 파병론'(국방부) '신중 파병론'(외교부) 및 '파병 반대론'(정무수석실) 등이 모두 혼재하게 됐다. 언뜻 정책 혼란처럼 비쳐지지만 청와대측이 도리어 이 같은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흔적도 곳곳에서 보인다. 유 수석의 발언이 전날 "일부 언론에서 마치 파병이 검토되고 있는 것처럼 앞서가고 있는데 그렇지 않도록 해달라"는 노 대통령 발언 직후 나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유 수석이 조기파병론으로 기울 듯 했던 정부 분위기에 제동을 건 것이라는 해석이 그래서 나온다.
물론 청와대는 유 수석의 발언이 의도된 것이라는 시각을 부인한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유 수석이 균형감을 잃었다면서 '마땅치 않다'는 심기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의 다른 핵심관계자는 "지난 9일 청와대에서 파병관련 회의를 열고 파병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들을 최대한 공론화하기로 했다"면서 "유 수석의 발언은 이런 방침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청와대는 당분간 파병과 관련된 논쟁을 의식적으로 유도하면서 여론의 대세가 정해지기를 기다리겠다는 자세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내주에 합동조사단을 이라크에 파견해 7∼8일간 현지상황과 민심 등을 조사할 계획임을 발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조사결과가 나오는 이 달 말까지 정부의 결정도 유보될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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