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정부나 고위 공직자가 언론과 야당을 상대로 소송하는 것을 제한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 인권위원회는 지난달 말 이 문제를 주제로 워크숍을 연 데 이어 17일 오전 전체회의에서 이번 정기국회 에 법안을 상정해 통과시킨다는 계획을 확인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단체는 "언론의 허위보도로 인한 피해구제를 어렵게 한다"며 반대의사를 밝히고 나섰다.반 전략적 봉쇄소송 제도란
한나라당이 추진 중인 이른바 반 전략적 봉쇄소송(Anti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제도는 현재 캘리포니아주 등 미국 20여개 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다. 한번 소송을 제기하면 막대한 비용이 드는 미국 사법시스템을 악용해 원고가 적법한 소송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피고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려고 제기하는 부당 한 소송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 법에 따라 정부와 대기업, 공인의 행위에 대한 언론이나 시민의 비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명백한 악의 등에 대한 입증 책임이 원고에게 있고, 법원 재량으로 소송을 기각할 수 있는 특별기각신청제도를 두고 있다. 또 소송이 기각될 경우 원고에게 피고의 소송 수수료 및 변호사 비용 등을 물리도록 해 소송의 남발을 막도록 하고 있다.
표현자유 확대인가 청원권 침해인가
한나라당은 14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 정부 들어 대통령과 그 측근 인사들이 언론과 야당을 상대로 잇따라 제기한 거액의 소송이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규정하고 반 SLAPP 제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고위공직자는 일반인보다 언론매체와의 접촉기회가 많아 허위사실에 대한 반박기회가 많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비판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한나라당은 구체적으로 법안이나 정책에 대한 비판 보도에 대해서는 소송 제기를 금지하고, 공직자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에 대한 소송은 제한하는 내용을 담기로 했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반 SLAPP 법안의 국회 통과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용상 헌법재판소 사무처장도 지난해 제1회 철우언론법상 수상식장에서 고위 공직자, 검사, 정치인의 소송이 언론의 비판기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며 전략적 봉쇄소송을 막기 위한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16일 논평에서 "언론의 무책임한 허위·왜곡 보도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장치를 해온 법원으로부터 아예 언론사를 보호하겠다고 나선 것"이라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재진 한양대 언론학과 교수도 "반 SLAPP은 소송을 통해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청원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를 제약하는 측면이 있고, 무엇보다 미국과 우리나라는 소송법 체계가 달라 입법에 신중해야 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언론 대상 소송이 늘고 소송가액도 커지고 있지만 배상 판결액이 평균 3,000만원 정도이고 판례도 언론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이 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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