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정파가 둘 이상의 정당으로 쪼개져 내년 총선에 임하게 되리라는 것은 이제 명확해졌다. 다변 욕구를 자제하지 못해 불필요한 분란거리를 끊임없이 만들어온 노무현 대통령이 신당 문제에만은 입을 굳게 다물어 왔지만, 신당의 제일 추진력이 청와대에서 나오고 있으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사실 거의 없었다.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 특히 호남 지역 유권자들 다수에게는 이런 상황이 당혹스러울 것이다.'영남 유권자의 반을 얻기 위해 호남 유권자의 반을 버리겠다'(신기남 의원)는 신당 구상이 비윤리적이라는 것을 기자는 이미 이 자리에서 지적한 바 있다. 더 나아가 그 구상은 전술적으로도 어리석은 짓이니, 노선의 급격한 보수화를 동반하지 않는 한 내년 총선에서 신당이 영남에 뿌리를 내릴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기자의 예측이 틀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자당의 대통령 후보를 마구 흔들어댄 민주당 안의 추레한 '정치 자영업자들'을 호남 유권자 일반과 결과적으로 한 묶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청와대를 정점으로 한 신당 추진 세력은 두드러지게 부도덕하다. 자신들의 집권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유권자 집단에 대한 이 약삭빠른 배덕은, 따돌림을 무릅쓰고 이들의 배덕에 맞서 아름다운 원칙을 고수해온 추미애 의원의 분투와 함께,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그러면 호남의 개혁적 유권자들로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당 추진 세력의 분열주의에 화가 나 민주당을 지지해야 하는가? 아니다. 호남을 지역구로 둔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그 당의 가장 퇴행적인 부분을 대표해 왔다. 우리는 그것을 지난 해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최근까지의 신당 논의에서도 확인했다.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완전히 새롭고 개혁적인 얼굴들을 내놓지 않는 한, 지금까지의 관행에 따라 민주당에 '자동 투표'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신당을 지지해야 하는가? 원칙적으로 그렇다. 신당의 후보에게 큰 흠이 없는 한, 배신감에도 불구하고 신당을 지지해야 한다. 신당은 아마 그 전체로서는 민주당보다 개혁 색채가 짙을 것이고, 그런 개혁 정당이 갑자기 보수적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어 '전국 정당'이 될 성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부모가 창피하다며 집을 뛰쳐나갔다가 세상에서 따돌림 당하는 자식을 거두어 보살피는 심정으로, 호남 유권자들은 신당을 감싸야 한다. 비록 내키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지금까지 한국 정치 의식의 개혁적 부분을 감당해 왔던 호남 유권자들의 임무다. 신당이 호남에서 배척 받는다면, 참여 정부의 앞날은 파산이라고 해도 좋다.
이 말은 지금까지 민주당에 보냈던 지지를 고스란히 신당으로 돌려야 한다는 뜻인가? 아니다. 호남 지역의 개혁적 유권자들은 이런 당혹스러운 상황을 선용해 내년 총선에서 한국 정치의 신기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어떻게? 적어도 신당에 대한 격려 이상의 지지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 정당에 보내 이들 진보 세력을 원내로 진입시키는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는 구체제로의 퇴행 여부가 걸려있었으므로, 개혁적 유권자들도 진보 정당의 후보에게 마음 놓고 투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진보 정당에 대한 호남 유권자들의 넉넉한 지지는 한국에서 진보 정치의 싹을 틔워 이념적 정규 분포를 지닌 표준적 민주주의로 가는 레일을 까는 한편, 지역주의를 지렛대로 삼은 노무현 정부의 영남 회귀와 민주당의 호남 기득권 집착에 대한 동시적 비판이 되기도 할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호남 유권자들은 우리 사회가 구체제로 퇴행하는 것을 막는 결정적 버팀목 노릇을 했다. 내년 총선에서 진보 정치의 싹을 틔우는 또 한 차례의 도약 역시 호남의 개혁적 유권자들에게 크게 달려 있다.
고 종 석 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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