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6자회담이 끝나자마자 북한은 회담 무용론을 제기,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미국은 애써 무시했지만 북한은 미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북한과 미국 양쪽에서 북 핵 문제의 전도에 잇단 청신호 징후가 보이고 있다. 북한은 정권수립 기념일인 9·9절 55주년 행사 때 무력시위를 하지 않았고, 영변 핵 시설 가동을 중지했음이 확인됐다. 미국도 대북 강경론을 주도했던 매파들이 이라크전 후유증 때문에 뚜렷한 퇴조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9·9절 때 신형 미사일 퍼레이드 등 무력시위를 자제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중재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9·9절에 앞서 북한 관측통들은 북한이 새로 개발한 사정거리 4,000㎞미사일을 김일성 광장에 선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 미사일은 일본 전역은 물론 태평양 괌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일부 외신은 한걸음 더 나아가 북한이 아예 핵 보유선언을 해 버릴지도 모른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영변 핵 시설은 북한이 벼랑 끝으로 가는 레드라인(한계선)을 한 단계씩 넘을 때마다 관심의 초점이었다. 그러나 미국 첩보위성은 북한이 이곳의 핵 시설 가동을 중지했음을 확인해 냈다. 대화 분위기 조성을 노린 제스처라는 게 지배적 분석이다.
■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방미중인 윤영관 외교부 장관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20여분간 면담한 뒤, 미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 지고 있다. 윤 장관의 부시면담에는 대북 대화론자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배석했다. 워싱턴 외교가는 부시가 파월 장관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및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의 강경파가 지루하게 벌여온 북한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파월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해석했다. 따 놓은 당상처럼 보였던 부시의 재선가도에 적신호가 켜졌고, 럼스펠드와 라이스가 코너에 몰리고 있다는 기사가 미국언론에 계속 실리고 있다.
■ 예측 불가능한 북한의 태도를 감안하면 청신호 징후는 아전인수식 해석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이 벼랑 끝 전술을 중단했다는 것이며,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가 압박보다는 대화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6자회담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의 태도가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가 이 같은 호기를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 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외교역량 발휘가 요청되는 이유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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