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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3.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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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490년, 그 유명한 마라톤 전쟁의 주인공은 누구나 알 듯 그리스죠. 마라톤 평원에서 승리한 그리스군의 한 전령이 40여㎞를달려 '우리가 이겼다'는 외마디를 남긴 채 절명했다는 고사 역시 어린시절부터 머리에 박힌 내용입니다.그렇다면 그 주인공의 영광에 피와 살을 붙여준 악역, 그러니까 상대편이 어디일까요. 저도 이번 이란 여행을 통해 새삼 알게 됐는데, 바로 페르시아였던 겁니다. 당시 그리스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이가 페르시아의 전성기를 구가한 다리우스 대제였습니다.

페르시아인들이 지금 마라톤 경기를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영원한 승리의 월계수를 그리스가 얻은 대신 페르시아는 영원한 패자의 몫을 짊어졌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말이 될까요. 페르시아의 후손인 이란이 지금도 유일하게 마라톤을 금기시하고 있다는 사실엔, 그냥 흘려 보내기에 꺼림칙한 그 무엇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서양 고대사의 대부분을 그리스-로마 시대의 발전 선상에서만 바라봅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세계 제국은 수없이 들었지만, 그 이전 중동 지역의 세계 제국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죠. 알렉산드로스의 정벌 영토가 페르시아 제국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도요. 사실 아프리카 북부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중동 전역을 처음으로 통일, 최초라고 해도 무방한 세계 정부를 형성한 거대 제국은 페르시아였습니다. 지금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그림자로서 인식될 뿐이지만….

이게 바로 문제의 오리엔탈리즘이겠죠. 동방을, 동방 스스로 얘기하지 못하고 서양의 눈과 시각으로서 인식하는 현실 말입니다.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운 알렉산드로스의 행위는 명백한 반달리즘, 즉 야만인의 행동이지만, 서양의 눈으로는 정치적 행위로 치부하죠.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정벌 지역에서 잔혹한 학살을 감행했지만, 위대한 정복의 역사로 기록되듯이요.

그리고 이 문제는 오늘 현재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란, 이라크 등 중동 문제가 여전히 미국과 서양의 눈으로만 파악되고 있으니까요.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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