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로 부산, 마산 등 바닷가 지역 주민들이 최악의 피해를 입은 데는 방재시설 설치를 등한시한 안전불감증이 자리잡고 있었다. 도시계획시설기준에 관한 규칙 등에 방수·방풍설비 기준이 명시돼 있지만 상당수 건물이 이를 지키지 않았고 관할 당국도 감독과 점검을 소홀히 했다. 이번 태풍으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난 경남 마산시 해운동 주민들은 "매월 15일 만조가 되면 해안도로와 바닷가 아파트 곳곳이 물에 잠겼다"며 "자연재해야 어쩔 수 없더라도 예방을 등한시한 시 당국의 안일한 대처가 사고를 키웠다"고 울분을 토했다.이곳 매립지에 건설된 아파트 10여동은 바다와의 거리가 20∼30m에 불과, 언제든 큰 파도가 밀려올 수 있는 데도 방재시설이라고는 철제 펜스가 전부였다. 펜스 옆에 쌓여있던 원목은 이번 태풍 때 엄청난 흉기로 돌변하기도 했다.
이곳 D아파트 주민 김모(56)씨는 "물빼기 작업을 닷새째 진행한 결과 이제야 겨우 지하1층 주차장 배수 작업이 끝났다"며 "아파트 외곽에 최소한의 방재시설만 있었더라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다와 150여m 정도 떨어진 신포동 D백화점에도 12일 밤 17만톤의 해수가 밀려들었다. 방재·방수시설이 전혀 없는 이 백화점은 쏟아져 들어오는 바닷물을 보고도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백화점측은 대형 양수기 2대를 지원받아 15일에야 지하 1층 물빼기를 완료했다. 나머지 지하 2∼5층은 여전히 물속에 잠겨 있다. 백화점 김모(35) 팀장은 "자연재해에 대한 대비는 건물 설계에서부터 배제됐다"고 실토했다.
주민 200세대와 점포 236곳이 입주한 남성동 D주상복합상가와 주민 180여 세대가 살고 있는 인근 P아파트 역시 바다와의 거리가 50m에 불과한데도 배수로, 옹벽 등 마땅히 있어야 할 방재시설은 없었다.
사정은 부산도 마찬가지. 12일 밤 10여m 높이의 파도가 덮친 수영만 매립지의 한화리조트는 두께 1.5㎝의 1층 강화유리가 모두 박살났고 지하 5, 6층도 완전히 물에 잠겼다. 인근 건물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이번 태풍으로 바닷가 인근 건물의 취약성이 확인됐는데도 수영만 매립지와 민락동 등 바닷가 주변에 40∼47층 짜리 고층 오피스텔 4, 5곳과 32∼40층 짜리 고층 아파트 건립이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
마산시 곽능섭(49) 방재계장은 "해안 인접 상가와 아파트 단지의 방재시설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앞으로 관계기관과 협의해 방재시설 설치기준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마산=김종한기자 tellm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