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축출키로 결정한 데 이어 아라파트를 암살할 수도 있다고 공언하면서 국제사회에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측에 다시 한번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아랍권은 긴급 회동을 갖는 등 아라파트 수반을 둘러싼 역내 움직임도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다.이스라엘 정부 2인자인 에후드 올메르트 부총리는 14일 공영 라디오 방송에 나와 "아라파트를 추방하는 것 뿐 아니라 살해하는 것도 분명히 하나의 선택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테러 지도자들을 모두 제거하기 위해 노력 중이며 아라파트는 테러 지도자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엘 샤론 총리의 최측근인 올메르트 부총리는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구인 신베트는 아라파트를 추방하기보다는 살해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안보회의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서는 이스라엘이 미국 등 국제사회의 반발을 무시한 채 암살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감행할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일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강경 발언은 최근의 아라파트 축출 결정이 1회성 시위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AP 통신은 부총리의 암살 언급이 팔레스타인측에 아라파트를 포기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올메르트 부총리가 암살 외에 전화 차단, 방문객 접근 금지 등 아라파트를 외부로부터 철저히 격리시키는 방안을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도 이스라엘이 실제 모종의 조치를 마련 중임을 나타낸다. 아라파트 수반은 2년 가까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의 자치정부 청사에 고립돼 나오지 못하고 있으나 외부인 접촉 등 청사 내 활동은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 핵심 각료의 입을 통해 암살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관련국들의 대응도 바빠졌다. 바그다드를 방문 중인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14일 미 폭스뉴스와의 현지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아라파트 수반을 추방하거나 살해할 경우 아랍권과 전세계 이슬람 신도들의 분노를 촉발할 것"이라며 "미국은 아라파트의 제거나 추방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파월 장관은 올메르트 부총리의 발언에 대해서도 "많은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자신의 견해를 발표하고 있지만 결코 유익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랍연맹 22개 회원국 대표들은 15일(현지시각) 카이로에 모여 최근의 이―팔 긴장상황을 논의한다. 이어 아랍연맹 외무장관들은 22일 유엔총회가 열리는 뉴욕에서 긴급 회동을 갖고, 이스라엘의 아라파트 축출 결정과 관련한 범 아랍권의 대응을 마련키로 했다. 아랍권은 "아라파트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경한 태도가 중동 평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미국 등 국제사회가 적극 나서 이스라엘측에 압박을 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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