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가위에도 어김없이 호화분묘가 구설수에 올랐지만, 우리 역사 유물이 숨어있는 곳은 주로 호화 고분이다.최근에도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에서 암각화가 확인되고 기원전 2세기 경의 목관묘, 낙랑계의 토광묘 등에서는 각종 유물이 발견됐다. 평양의 고조선 시대 석곽묘에서도 놋단검과 청동거울, 돌 활촉 등이 출토됐다고 한다. 770년경 신라 종이를 사용한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불국사 석가탑 안에 숨어 있었다. 1966년 10월 도굴꾼이 이 탑을 털려다가 들키는 바람에 우연히 발견됐단다.
도굴꾼이 눈독을 들이는 무덤이나 탑이야말로 역사박물관이자 타임캡슐인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후세의 역사가들을 위해서는 지금도 부장품을 듬뿍 묻는 호화분묘를 더러 허용해도 좋지 않을까.
우리 민족은 원래 영혼불멸의 신앙이 강했다. 신석기 시대부터 이미 매장 풍습이 싹텄고, 분묘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부장품도 많았고, 첩, 신하, 종 등 100여명을 순장한 예도 있었다. 삼국시대에 불교와 함께 화장 양식인 다비(茶毘)가 전래됐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토장 풍습을 선호했다. 1912년부터는 일제가 화장을 강요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최근에는 묘지가 국토를 잠식한다는 인식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화장이 늘면서 화장장이나 추모공원의 설치가 문제란다. 하지만 어째서 이런 시설의 공영화나 대형화만 앞세우려는 걸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찰이나 교회, 병원 또는 민간에 맡기면 저절로 해결되지 않을까.
대부분의 가족은 산소가 하나는 있을 게다. 이 산소를 가족 납골당으로 개조할 수도 있고 무덤은 그대로 둔 채 묘역을 활용할 수도 있다. 흩어져 있던 묘를 모으면 가족들도 좋고 묘지도 줄며 대형 추모공원의 수요도 감소될 것이다. 공원묘지 등에서는 자연스럽게 화장장 설치에 나서지 않겠나. 멀수록 좋다던 측간(변소)이 어느새 집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조만간 가족 납골묘에 관한 인식도 변해서 도심에 자리를 잡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유명인들이 화장 서약을 하면서 엄연한 사생활을 공개한다는 것은 참말로 얄궂은 일이다. 정말 솔선하기로 한다면, 국립묘지에 화장장을 설치하고 여기에 안장되는 이부터 화장해야 하지 않을까.
조 영 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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