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15일 이라크 추가파병과 관련된 미국의 요청 내용을 비교적 소상히 밝히면서도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은 없으며 지금부터 검토를 시작해야 하는 단계"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조심스러운 태도는 전투병 파병이 심각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요청은 한마디로 '한 지역을 맡아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갖춘 경보병 부대'로 요약된다. 경비도 자비 부담이 원칙이라고 한다.정부는 앞으로 인명손실의 가능성을 전제로 파병을 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요청을 거절할 것인지에 관한 입장을 결정해야 한다. 청와대는 북핵 문제 해결을 포함,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에 도움이 되느냐가 우선적 판단기준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통적 한미 동맹관계의 유지·강화 필요성 등도 총체적 고려대상에 들어간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 요인 못지않게 국내에서 제기되는 반대 여론의 강도가 파병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주요 정치적 지지기반이 '파병 반대'쪽에 설 것이 분명한 상황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함께 파병 이후 우리측의 이라크 재건사업 참여 기회가 어느 정도나 확대될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전투병을 파병키로 결단을 내리는 경우에도 풀어야 할 난제가 많다. 파병 규모와 관련해 미국은 '폴란드형 사단급'을 요청했지만 병력수를 가능한 줄이기 위한 협상도 만만치 않다. 파병 병력을 줄여 독자적 작전 수행능력을 갖추지 못할 경우 외국 군대의 직접적 통제 하에 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엔 오히려 작전 수행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다국적 군대간 불필요한 마찰이 발생할 수도 있다.
파병 시기와 관련해서도 정부는 '빨리 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에도 불구,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10월20일부터 시작되는 APEC 정상회의 때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어 그 전에는 가부간에 결정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파병 시기와 관련해서도 가급적 늦추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파병 결정 직후 바로 파병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할지 여부도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미국은 현재 유엔에 자신이 주도하는 다국적군 구성을 위한 결의안을 제출해 놓고 있으나 결의안 통과에 관계없이 파병 여부를 결정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미국이 아닌 유엔이 주도하는 평화유지군(PKF)이 구성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어 결국 파병할 경우 미군의 지휘를 받게 될 수밖에 없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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