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일산신도시 마두동 일산문화센터 공사 현장. 일산지역 문화예술인 9명이 형형색색의 컬러페인트를 온몸에 뒤집어 쓴 채 일산문화센터 건립에 반대하는 이색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들은 "특정계층을 위한 거대한 문화센터보다는 대다수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작고 다양한 문화공간이 필요하다"며 공사 중지와 재설계를 요구했다.이날 행사에는 여균동(영화감독) 안태경(공연기획가) 김남일(소설가) 홍현숙(화가) 손세실리아(시인) 박정희(무용가) 등 일산거주 문화예술인들이 참석했으며 성명서 발표에 이어 도심에서 가두행진도 벌였다.
대형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이 갖춰지는 일산문화센터 건립에 반대하는 지역 문화 예술계의 목소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들은 주민들이 문화를 마음껏 향유하려면 일부 계층을 위한 거대한 문화시설보다는 소규모 문화공간 확충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문화센터 건립을 주도하고 있는 고양시측은 조만간 인구 100만 명의 광역시 승격이 예견되고 수도권 서북부의 문화중심지로 자리잡기 위해 대형 문화시설 건립이 시급하다고 맞서고 있다.
서북부 최대의 일산문화센터
일산문화센터는 일산신도시를 향락도시에서 문화도시로 변모시키고, 척박한 문화환경을 개선하자는 취지로 지난해 9월 첫 삽을 떴다. 신도시 중심부인 정발산 기슭아래 1만6,000평 부지에 지하2층 지상4층 규모로 세워질 이 초대형 건물은 무려 1,068억원이 들어가는 지역 최대의 문화시설. 2005년 12월 이 거대한 문화시설이 완공되면 2,000석 규모의 오페라극장 콘서트홀(1,500석) 실험극장(200석) 야외공연장 도서관 체육시설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와 함께 고양시청 인근에도 대형 문화체육시설인 덕양문화체육센터가 내년 4월 완공된다. 이 센터에는 다목적 대공연장(1,500석)과 수영장 실내빙상장 체육관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선다.
"일산문화센터 밑그림 다시 그려야"
대형문화센터 건립에 대해 지역 문화단체들은 민의를 수렴한 제대로 된 문화시설을 짓자며 강력하게 제동을 걸고 나섰다. 가장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문화도시 고양을 생각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이하 고생모). 일산 등 고양시 거주 문인 화가 영화인 연극인 가수 등 130명으로 구성된 고생모는 일부계층을 위한 거대한 문화센터의 무용(無用)론을 제기하고 있다. 웅장한 공연장은 보기에는 좋지만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는 문화의 주체가 되기에는 크게 미흡하다는 것. 고생모 대변인 여균동(45·영화감독)씨는 "2,000석 규모의 오페라 극장은 대형공연이 많지 않아 일년에 태반을 텅 빈 채로 놀릴 것이며, 콘서트홀(1,500석)도 일부 방송사의 쇼공연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다"며 "100∼300석 규모의 소극장을 여러 개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문화시설 운영프로그램의 부재 및 막대한 혈세 부담 등의 부작용도 예견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 고생모 심준용(24) 간사는 "최근 수도권에 건립된 150여 곳의 문화시설 대부분이 부실 운영되고 있다"며 "인구 1,000만 명인 서울 예술의 전당(2,300석)에 버금가는 일산문화센터의 경우 공연장 활용방안부터 강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생모는 이에 따라 공사를 일시 중지한 뒤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소규모공간으로 재설계하고 주민과 지역전문가, 문화예술인 등이 참여하는 공공위원회를 열 것으로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설계변경 등은 현실적으로 힘들어"
이에 대해 고양시는 일산문화센터가 이미 착공한 상태에서 설계변경 등은 예산낭비만 가중시킨다며 당초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고양시 관계자는 "공정률이 17%에 달하는 상태에서 설계 변경으로 시설을 수정할 경우 무려 450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며 "차리리 이 비용으로 다른 택지지구내에 다양한 문화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규모가 커 효용성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일산문화센터는 고양시뿐만 아니라 수도권 북부지역의 문화수요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올해 말까지 운영프로그램 방안 등을 모두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생모는 일산문화센터 백지화를 위해 조만간 주민서명운동은 물론 공사중시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투쟁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여 문화시설 건립과 운영을 둘러싼 논란은 증폭될 전망이다.
/송원영기자 w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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