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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수능 총점석차, 버려야할 슬픈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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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수능 총점석차, 버려야할 슬픈 초상

입력
200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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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다수가 평생 가슴에 담고 사는 아픈 기억 중 하나는 학교 다닐 때의 등수일 것이다. 성적표에 찍혀진 '평균 몇 점에 전체 몇 등'이라는 꼬리표는 소수에게는 그야말로 자랑스러운 훈장이지만 나머지에게는 낙인이나 멍에가 된다.그러나 지금의 학교현장은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전 과목을 잘해야 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총점 석차제도가 폐지된 지금은 특정과목이나 분야만 잘해도 상을 받는다. 개인의 특기나 적성에 의한 '여러 줄 세우기'가 정착돼가고 있는 것이다. 수능 총점석차를 폐지한 것은 바로 이러한 학교현장의 변화를 입시제도에 담기 위한 것이었다.

다른 나라들을 살펴봐도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입학시험에서 총점석차를 공개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고, 우리보다 훨씬 적은 내용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의 수능시험과 유사한 미국의 SAT의 경우 영역별 성적 및 백분위만 제공한다. 일본 대학입시센터 시험은 더욱 간결해서 개인별로 과목별 득점만 통보하고 전체적으로 과목별 평균점, 최고점 및 최저점, 표준편차를 발표할 뿐이다.

대학진학시 정확한 자료가 없어 수험생 및 학부모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총점석차에 의한 대학 서열화의 결과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어려움은 있지만 수능 총점제 폐지이후 교육인적자원부가 의도한 정책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제도가 폐지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수능성적 전체 영역을 반영하는 대학은 95개(2001년 156개 대학)로 줄었다. 서울 소재 주요 대학들의 경우 모집 단위별로 일부 영역만 반영하거나 영역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또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을 반영하는 특별전형이 활성화되고 있다. 2001학년도 특별전형은 모집인원의 약 22%에 불과했지만 2003학년도에는 약 33%로 크게 증가했다.

수능 총점석차 공개는 더욱 극심한 눈치작전을 초래하고, '한줄 세우기'에 의한 대학서열화를 고착시킬 것이다. 대학서열화는 부정확하게 작성되는 사교육기관의 대학배치표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미국은 대학별로 중간 50% 입학생(Middle 50% of first year student)의 SAT 성적범위(800점 만점)를 영역별로 공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MIT대학의 경우 언어영역(Verbal)은 680∼760점, 수리영역(Math)은 740∼800점이다. 우리 대학들도 비정상적인 서열화 현상을 막고 수험생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개략적인 점수 범위를 공개할 필요는 있다.

수능 총점석차를 공개하는 것은 어렵게 사라져가는 '한줄 세우기'의 망령을 다시 불러 세우는 일이다. 21세기를 살아갈 후손들에게 기성세대에 익숙한 한줄 세우기 문화를 강요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한 석 수 교육인적자원부 대학학사지원과장 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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