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토크쇼의 인기 진행자로는 CBS '레이트 쇼'의 데이빗 레터맨, 몇 해 전 오노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NBC '투나잇 쇼'의 제이 레노, 그리고 오프라 윈프리 등 '빅3'가 꼽힌다. 하지만 이제는 '빅4'로 불러야 할 것 같다. '인생 전략'(Life-Strategy)이라는 신 개념을 내세워 개인 컨설팅을 해주는 '닥터 필 쇼'의 닥터 필(Dr. Phil)이 새 강자로 부상했기 때문이다.필자가 살고 있는 조지아에서는 5개 케이블 채널, 뉴욕에서는 무려 10개 케이블 채널이 이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이 토크쇼는 미국 전역을 돌며 녹화하며, 홈페이지와 연결된 사이트에서 방청권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선착순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닥터 필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메인 플로어의 방청권이 135달러, 가장 싼 티켓도 60달러를 호가한다.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를 꽤 좋은 자리에서 구경하는 비용이 30달러 정도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가격이지만, 신청자가 줄을 잇는다. 그가 쓴 다이어트 및 인생 컨설팅 서적들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일부 서적은 뉴욕 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에 들기도 했다. 과연 그의 인기비결은 무엇일까?
경제 불황, 전쟁과 테러,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는 선거 열기…. 언뜻 보면 미국은 이런 굵직한 이슈들의 중심에 놓여있지만, 일반 국민의 주된 관심사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국내외 정세와 경제가 아무리 불안해도 미국인들의 삶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안정돼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은 자잘한 일상, 혹은 삶을 보다 풍요롭게 가꾸는 방법에 더 큰 애정을 갖는다.
'닥터 필 쇼'를 들여다 보면 이런 심리를 짐작할 수 있다. "단시일 내에 20파운드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결혼 1년차 부부의 고민은?" "이혼은 독립적인 삶을 위한 최선의 결정인가" "인터넷에 중독된 자녀, 어떻게 선도할 것인가"…. 이 토크 쇼의 관심사는 바로 이런 것들이다.
'닥터 필 쇼'의 가장 큰 매력은 소위 '셀레브리티'(유명인사)가 출연하는 레터맨과 레노의 쇼와 달리 일반인들이 등장해 작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이다. 그 덕에 진행자의 웹 사이트를 통해 단단한 커뮤니티가 형성돼있고, 팬들은 서로의 고민과 앞으로 다뤘으면 하는 주제 등에 대해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프로그램의 인기를 더욱 높여간다.
유명인만을 고집하지 않고 시청자들의 생생한 고민을 스튜디오에 던져놓고 함께 생각해보고 풀어가는 토크 쇼,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시도해 봄직하다.
/유현재·미국 조지아대 저널리즘 석사과정·제일기획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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