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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삼척 신리 "너와 민박" 상량식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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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삼척 신리 "너와 민박" 상량식 날

입력
2003.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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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오후 들면서 그예 비를 뿌린다. "또 지랄이네…. 시간에 대겄나." 손 바닥을 펴서 빗줄기를 잡아보던 대목(大木) 김병식(62)씨의 혼잣말. 하지만 곧 주민들을 채근한다. "두어 시간 남았다. 서둘자, 으이!" 오후3시 상량식은 무리인 듯 싶었지만 읍장 이하 지역 유지들에게 일정을 통보해 놓은 터. 껍질 벗겨 대패질 해놓은 소나무를 길이 맞춰 자르고, 양 끝에 암수 홈을 내서 들보 올리는 등 빗속 작업은 이내 강행됐다. 이날 작업은 신리(新里) 너와마을 민박타운 4동 가운데 첫 건물이 될 식당 건물의 마룻대 올리기. 마을이 생긴 이래 몇 차례의 전환기가 있었지만 모두가 위로부터 강요된 것이었던 반면, 이번 만큼은 주민들의 뜻으로 처음 시도하는 대역사(大役事)인 것이어서 고된 기색은 어디에도 없었다.신리 마을의 고단했던 유전(流轉)

강원 삼척시 고한읍 신리. 태백에서 울진가는 완행 시외버스가 마을을 지나는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으로, 반경 10㎞ 이내에 인적이라고는 없는 산간 오지다. 마을에는 약 30년 전만 해도 골짜기 30,40리씩 들어가 화전으로 산밭을 일구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살림이야 팍팍했지만 옥수수며 감자 수수 농사로 배 주린 적은 없었는데, 나라에서 화전을 금하고 울진·삼척 무장공비 소동에 골짜기 소개령이 떨어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때마침 탄광 노다지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쌀 한가마이만 있으모 그걸로 인부 멕여서 쫄딱 구디(소규모 탄광) 사장한다고 나서던 시절"이 시작된 것이었다. 돈 없고 땅 없는 주민들은 제 손으로 소나무 베어 기둥 세우고 널 쪼개 지붕 얹은 너와집을 버리고 하나 둘 마을을 떠, 70년대 이농 유랑의 고된 삶을 이어갔다. 그 삶의 흔적은 묵은 화전 논·밭과 통방아 물레방아로, 삭아버린 너와 조각으로, 416번, 427번 지방도로 따라 골짜기 여기저기에 남았고, 한 때 전교생 200명에 육박했던 대교국민학교는 학생 7명의 분교로 기신기신하고 있었다.

송이가 마을의 들보로

양양, 인제나 인근 울진보다는 양이 덜하지만 마을이 부싯골, 화철동(火鐵洞)으로 불리던 먼 옛적부터 앞 뒤로 막아 선 응봉 육백 복두 등 태백의 갈빗대 산 능선에는 송이가 그렇게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일로 삼고 송이를 따기 시작한 것은, 그게 돈이 되기 시작한 70년대 이후부터. 홍순환(76)씨는 "어릴 때부터 송이 따 오모 죽죽 찢어서 호박 잎에 얹어 화로에 꾸우도 묵고, 볶아도 묵고 했지. 그 맛이 푸지고 기가 멕힛는 데…." 그것이 일본으로 수출이 된다고 하더니 순식간에 금(金) 송이가 된 것이었다. 송이철이 되면 식전 댓바람부터 산을 누비며 송이를 땄고, 그 50여 일간의 송이농사가 1년 밭농사보다 훨씬 낫더라고 했다. 거랑집 할아버지 김성렬(82)씨는 선수로 통한다. "한창 때는 새끼 꼬아 만든 주루막에 한 배낭 채워 내려온 뒤 아침 묵고 또 올라가고, 일 없어도 산 지키고 섰고 그러지." 한 주루막이면 약 20㎏. 값이 좋을 때는 1등품 동송이 수매가가 ㎏당 기십만원도 우스운 시절이니 주민들은 이제 청설모나 새가 뜯어먹다 버린 것이나 상품가치가 없는 못난 놈들이나 간신히 맛보게 됐지만, 대신 송이는 아쉬우나마 마을을 지탱하는 대들보가 된 셈인데.

더도 말고 상량 축문 만큼만…

지난 해 말 마을은 어렵사리 정보화 시범마을에 뽑혔다. 가구수(63가구)가 적어 연초 1차 심사에서 탈락했다가, 주민들의 열의가 반영돼 전국 유일의 100가구 미만 정보화마을이 된 것이다. 도가 벌여 온 새 농촌 건설운동에서도 우수마을에 선정돼 5억원의 지원금을 타왔다. 해서 시작한 게 너와 민박타운 건립이고, 인근 2,000평을 터서 주차시설과 파고라 등 간이 휴게공간을 갖춘 다목적광장도 조성키로 했다.

"이제 뭐든 해서 마을을 알려야 하잖아요. 그래야 뽑아준 나라도 체면이 서고, 밀어준 도나 읍에도 보답이 되지요."

하지만 그 사이 마을 일은 이장 홍순만(48)씨의 의지와 달리 제대로 풀리지는 않았던 듯. 지난 5월에는 마을이 생긴 이래 최초로 도시 관광객들을 초청해 산나물뜯기 체험행사 벌여 인터넷과 지역 언론을 통해 홍보를 했다가 전날부터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무산됐다. 부녀회장 전부용(64)씨는 "칡전병에 감자부침 등 50인분 음식을 준비했다가 행사가 취소되는 바람에 마을 잔치를 벌였다"며 웃었다. 두 번째 기획한 게 지난 달 말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나선 송이따기 체험행사. 하지만 이 역시 올해 잦은 비로 송이 발아가 지연되는 바람에 지난 주와 이번 주 행사를 연기했고, 일부 예약자들은 환불을 해가는 상황. 풀이 죽을 만도 하련만 주민들은 그게 아니라고 했다. "이게 크게 될라꼬 이러는 거라요. 함 시작하모 엄청 잘 될 거라요."

상량식은 예정을 훌쩍 넘긴 오후4시에야 간신히 시작됐다. 삼척 향교와 인연이 있는 이들이 우산을 받쳐들고 마룻대 주변에 모여들더니 '龍(용) 癸未(계미) 음(陰) 八月九日 上樑 龜(구)' 하고 상량문을 적고선 축문 구수회의가 시작됐다.

―발전이 좋나, 번영이 좋나

―태평은 넣어야지. 주민 건강이 젤이니까.

―화합, 총화…, 또 뭐가 있시꼬.

10여 분간의 빗속 회의 끝에 축문이 '동민 화합, 평화, 발전'으로 낙착되는 동안 아낙네들은 지신(地神) 택신(宅神)에 올릴 젯상을 들여오고. '배춧잎' 푸지게 문 돼지머리가 올려지는 순간 이게 웬 일인가. 거짓말처럼 날이 들더니 소부치쪽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봐라, 하늘이 정성을 들은 거라. 시방부터는 마커(모두) 좋아질 거라. 자! 지사(제사) 시작하자."

/삼척=글 최윤필기자 waden@hk.co.kr

사진 최흥수기자

"송이 따기도 체험하세요"

산에서 나는 값나가는 것들이 대개 그렇듯이 능이, 표고 웃전에 앉는 송이도 쉬 캐지는 게 아니다. 송이꾼들은 그래서, 솔잎 비집고 고개내민 송이를 보고, 쌉싸름 향긋한 향을 맡는 눈과 코가 따로 있다고들 한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송이는,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여름 끝물 기온이 내리면서 비가 오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는 8월 말부터 10월 말까지가 제철이다. 소나무 뿌리에 송진이 내리고 그게 뽀얗게 떠서 몇 차례 비를 맞으면 뿌리가 뻗은 결대로 송이균이 발아한다는 것. 송이는 볕이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능선따라 마사토에 뿌리를 댄 키가 덜 큰 못난 소나무 아래에 많다는 게 베테랑들의 귀띔이다. 꾼들의 작업은 늘 혼자다. 나던 자리에서 매년 올라오고, 그 자리는 부자간에도 알려주지 않는 것이기에 송이꾼 기술은 경력과 비례한다. 갓이 펴버린 '퍼드래기'는 질기고 향이 덜한 반면 갓이 덜 핀 동송이가 상품(上品)이다. 그래서 송이 따는 일은 운과 타이밍도 절묘해야 한다. 너와 민박마을 송이체험 행사에 가면 5명당 한 명의 베테랑 송이꾼들이 붙어 산길을 안내하면서 송이를 찾게 도와준다. (홈페이지 http://neowa.invil.org, 전화 033―552―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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