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기간에도 국내외의 난제들은 새로운 위기상황을 만들거나 첨예한 갈등을 예고함으로써 시시각각 노무현 대통령을 압박했다. 특히 부안 사태나 지리멸렬한 정치권의 이전투구 등과는 달리 이라크에 대한 추가 파병이나 쌀 관세율 인하 등 농업개방 문제는 국제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이어서 노 대통령의 고심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노 대통령은 이미 지난 4월 이라크에 의료·공병 부대를 파병할 때 격렬한 찬반 논란 속에서 대부분 반대쪽에 섰던 지지기반의 이반을 경험했다. 그래서 전투병력을 파병하는 결정은 그만큼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물론 노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만을 의식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북핵 문제 해결이나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 참여 과정에서의 한·미 동맹관계 강화가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국익인지의 여부가 판단의 핵심이다. 파병 규모 및 시기에 대해 '많을수록 좋고 빠를수록 좋다'는 미국의 요구와, 파병할 때 하더라도 유엔 결의안 등 가급적 명분과 모양새를 갖추려는 우리 입장 사이의 괴리도 부담이다.
이와 함께 농민운동가 이경해씨의 자살로 악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농업 개방 문제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개방에 저항하는 농민조직은 속속 노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여기에 태풍 피해까지 겹쳐 언제 집단행동으로 나설지 예측불허의 상황이다. '쌀에 대한 관세율 인하가 불가피해진 것 같다'는 등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리고 있는 칸쿤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위한 설득도 어렵게 하고 있다. 청와대측은 "개방경제에서 우리가 살아 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미 FTA 비준을 위한 '국정토론마당'을 취소하는 등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성난 농심(農心)'을 달랠, 마땅한 방도가 없는 것이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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