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나라당의 '물갈이 논란' 기사를 유심히 보면 그 대상으로 지목된 중진의원의 반론은 무성한데 그들의 실명은 찾기 어렵다. 주어는 대개 '한 중진', '영남의 3선 의원' 등 익명이다. "이름은 쓰지 말아 달라"는 당사자들의 부탁 때문이다. 이들에게서 코멘트를 딸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인 것이 현실이다. 상당수가 "대꾸해서 뭐 하느냐"며 입을 닫는다. 지금까지 자기 이름을 걸고 소장파에 맞선 중진은 유흥수 김용갑 의원 등 극소수다.대신 이들은 최병렬 대표의 등을 떠밀고 있다. "분란이 더 번지기 전에 대표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실은 "같은 60대에 5·6공 출신인 당신이 가만히 있어선 안된다"는 말이다. 몇몇은 자신이 대표경선에서 최 대표를 적극 도왔음을 들먹이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최 대표가 "'60대 용퇴론'을 다시 입에 담으면 문책하겠다"고 한 것이나, 대여 투쟁을 위한 물갈이 논의중단을 촉구한 것은 중진들의 압력과 무관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들의 속은 훤히 보인다. 최 대표의 뒤에 숨어 소장파와의 확전을 피함으로써 자신이 물갈이 대상으로 부각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상향식 공천제가 현역 의원에게 절대 유리한 만큼 시간을 끌면 선수(選數)를 늘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대선패배 직후 정계은퇴 의사를 표명했던 중진까지 요즘 들어 틈만 나면 지역구를 찾는 것도 그래서다.
'달라져야 한다'는 여론의 요구를 외면한 채 주판알만 튕기고 있는 이런 행태야말로 청산 대상일 것이다. 국민이 꼭 당의 단합과 안정에만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는, 지난 대선의 교훈을 상기해야 한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대우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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