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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추석 이후

입력
2003.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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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지났다. 예년에 비해 긴 연휴로 그 어느 때보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고향을 찾았지만 돌아오는 길이 편치 만은 않다. 너무나 큰 일들이 많았다. 미국이 전투 병력을 이라크에 보내주도록 우리 정부에 요청했다는 소식으로부터 시작해 멕시코 칸쿤에서 세계무역기구(WTO) 협상 반대 시위를 벌이던 이경해 전 한국농업경영인 중앙연합회 회장의 자살, 태풍 '매미'로 인한 엄청난 피해 등이 꼬리를 물었다. 그렇지않아도 농산물 작황이 극히 부진한 현장을 직접 보고 가슴이 아팠는데, 태풍은 여기에 결정타를 먹였다. 당장 농산물 가격 급등 등 물가 상승과 막대한 피해 복구 비용 등으로 살림살이가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일년 중 가장 먹거리가 풍부한 때지만, 이번 차례상에도 중국 등 외국산 농산물이 많이 올랐다. 특히 올해는 이경해 전 한농연 회장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겹쳐 우리 농업의 앞날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고향마을은 갈수록 고령화하고 있고, 미래는 불확실하기만 하다. 이러다가는 세계화 개방화라는 도도한 물결 속에서 그냥 힘없이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조차 하다. 농업 개방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그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 보름달을 보지는 못했지만 모두는 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보름달을 보며 가장 바라는 것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도 아니고, 더 좋은 직장으로의 이적이나 멋진 애인과의 만남도 아닌 복권 당첨이라고 추석 연휴 전에 실시된 한 조사는 밝혔다. 대상이 20∼30대의 젊은 층이지만, 서울지역 가구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외환위기 때보다 생활 형편이 더 어렵다고 토로했으니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경제적 풍요를 기원했을 것이다. 경기가 4·4분기부터는 회복할 것이라는 한국은행과 경제단체 등의 예상이 그나마 위안이다.

■ 이제 다시 일터로 돌아왔다. 올해 고향에 가고 돌아오는 길은 예년보다 무척 혼잡했다. 왜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고향을 찾았던 것일까. 우리가 외환위기를 상대적으로 빨리 극복할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로 가족을 드는 사람들이 많다. 새삼 느낀 가족의 소중함이 위기 극복의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좀처럼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번에도 그런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올해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공동체 의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언제까지나 동서남북으로 분열돼 갈등과 반목을 확대 재생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추석 이후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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