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만 보면 생도들이 어떤 훈련을 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어. 하늘이 허락할 때까지 생도 뒷바라지 하는 게 소원이야."공군사관학교에서 45년간 생도들의 땀이 배인 훈련복과 제복을 수선해오고 있는 김일락(77) 할머니는 9일 한가위를 앞두고 손자 뻘인 생도들로부터 용돈 30만원, 교직원과 졸업생들이 마련한 과일 바구니를 받아 들고 환하게 웃었다. 30대 초반에 처음 생도들과 인연을 맺은 그는 희수(喜壽)의 나이까지 한결같이 생도들의 곁을 지키며 바느질로 정을 베풀어 온 공사의 '살아있는 역사'다.
김 할머니의 재직기간은 현역 군인, 군무원을 통틀어 공군 내 최장기 기록. 이미 노병이 된 7, 8기 생도부터 올해 입학한 55기까지 모든 '보라매'들은 그의 손을 거친 옷을 입고서야 생도다운 옷 매무새를 갖췄다.
그는 한국전쟁의 여파로 공사가 경남 진해에 터를 잡고 있던 58년, 재봉사 모집공고를 보고 공사에 첫발을 디뎠다. 그 해 공사가 이사하면서 생도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고, 85년 공사가 다시 충북 청원군의 현 위치로 옮겼을 때도 생도들을 따라 내려왔다.
당시 할머니를 놓고 '쟁탈전'이 벌어졌던 일은 공군 내에서 유명한 일화. 서울에 남게 된 위관·영관급 교육기관인 공군대학 학생들은 할머니를 계속 붙잡아 두고 싶어했으나 생도들의 '집단민원'에 밀려 결국 할머니의 공사행이 결정된 것이다. 생도 중엔 김 할머니를 '어머니'로 부르는 이도 꽤 많을 뿐 아니라 작전사령부 권종필(38·37기) 소령과 공사 교수인 강창부(34·41기) 소령은 양아들이 됐다.
그가 지난 해 3월 대장암 판정을 받아 평생 몸담았던 공사를 떠나야 할 위기에 처했을 때 생도들은 곧바로 모금활동을 벌여 하루 만에 100여만원을 모아 전달했고, 다행히 수술이 잘 돼 다시 재봉틀 앞에 앉을 수 있게 됐다. 그는 "어린 생도들이 어느새 성장해 소령, 중령 계급장을 달고 찾아오거나 장군이 됐다는 소식을 전할 때 정말 기분이 좋다"며 "생도들의 옷을 고쳐주기 위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했지만 한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85년 작고한 남편이 생도들의 구두와 전투화 수리를 맡았으며, 슬하의 세 딸 중 둘째 김재숙(42)씨와 막내 김영란(39)씨가 현재 공사에서 군무원으로 일하고 있어 그의 가족은 그야말로 '공사 패밀리'이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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