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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불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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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불행의 이유

입력
2003.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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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인상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다시 말하자면, 행복한 가정에는 별 특징이 없다는 것이다. 부모는 돈을 벌어 자식들을 키우고 자식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뭐 그렇다. 만약 행복한 가정 대회 같은 게 열린다면, 그것처럼 따분한 일이 없을 것이다. 있을 것 대충 다 있고 남 하는 거 다 하고 그러면서도 서로 불만도 없고, 애들한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 보면 뭘 그런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 자기 부모라고 대답하는 그런 가정. 그런 집은 차도 어쩐지 레저용 4륜 구동일 것 같고 일요일이면 교회며 절이며 가족들이 오손도손 다녀올 것 같고 저녁이면 단란하게 일일 연속극을 보거나 가까운 식당에서 외식을 할 것 같다.반면 불행의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돈이 없어서, 성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아서,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서, 성격이 모나서, 누군가가 바람을 피워서, 시부모가 사사건건 끼어들어서, 정치적 견해가 달라서, 빚 보증을 잘못 서서, 형광등을 못 갈아 끼워서, 잠잘 때 이를 갈아서… 그밖에도 수많은 이유로 불행할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거기에서 끝이지만 수만 가지의 불행은 '안나 카레니나' 같은 대작을 만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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