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스럽습니다. 변변찮은 기술로 남는 시간에 주위 사람 몇 분 도운 것 뿐인데요."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스포츠센터에서 '행수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행수(59)씨는 자신의 선행이 주위에 알려진 것을 계면쩍어 했다. 지난 25년 동안 지체 장애인과 독거 노인, 소년소녀 가장 등을 찾아 다니며 무료 이발 봉사를 해왔던 김씨는 이발소가 쉬는 매주 월요일이면 이발 도구를 챙겨 들고 길을 나선다.
"원래 주위의 불우한 노인분을 챙겼어요. 모두 제 아버지 같고, 어머니 같아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죠." 그는 이렇게 시작한 봉사활동을 경기 가평 꽃동네, 서울 문래동 노숙자의 집,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파고다공원 등으로 넓혀갔다. 매번 60∼70명씩 머리를 잘라주다 보니 그의 손을 거친 사람이 수만 명에 이르고 있다. 김씨는 또 10년 전부터는 송파구 관내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지체 장애인 집을 직접 찾아 다니며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이발 기술을 익힌 뒤 1970년대 말부터 봉사활동에 나섰던 김씨에게 이제는 든든한 구원군이 생겼다. 김씨의 열성 탓에 부인 정사분(53)씨도 매주 월요일이면 함께 일을 거들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봉사활동을 지켜본 큰 아들 정현(38)씨와 며느리 김정아(40)씨도 이발사 자격증을 땄다. 최근 컴퓨터회사에 다니는 둘째 아들 용석(34)씨도 봉사 대열에 합류하면서 김씨 가족은 '가위손 가족'이 됐다.
"이제는 아내와 자식들까지 발벗고 나서 도와주기 때문에 힘든 게 없어요. 자식들이 내 모습을 보고 주변을 돌아보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 더 큰 보람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김씨가 보람을 느끼는 것은 봉사활동을 하다 만난 장애인들이 그에게 환한 미소를 지을 때다.
김씨는 "머리를 잘라주면 말도 잘 못하는 친구들이 '고맙다'는 말을 수십 번씩이나 하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며 "큰 도움을 준 것도 아닌데 감격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위를 움직일 수 있는 순간까지 봉사활동을 계속 하겠다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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