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2주년을 나흘 앞둔 7일 밤(현지시각) 대국민연설을 위해 TV 앞에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얼굴은 평소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18분간의 연설 내내 굳은 표정 탓인지 이마의 주름살도 훨씬 깊게 패여 보였다.130일 전인 5월1일. 조종사 복장을 한 채 미 해군 1호기를 타고 항공모항 에이브러햄 링컨 호에 내려 "이라크의 주요 전투 작전은 끝났다. 독재자는 쫓겨났고 이라크는 자유롭다"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하던 모습과는 영 딴 판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라크 등에서 수행하고 있는 테러전에 대해 "여러 전선에서 싸워야 하는 다른 형태의 전쟁이자 장기전"이라며 어려움을 인정했다.
종전 선언 이후 이라크 주둔 미군 사망자 수가 이라크전 당시의 사망자 138명을 크게 넘어서면서 이라크 상황이 베트남전처럼 기약 없는 장기전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갈 길 바쁜 부시 대통령은 결국 이라크 정책을 일부 수정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이라크전 반대 국가들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이라크 전후 처리에 대한 협조와 동참을 요청했다. 전후의 이라크를 미국이 주도함으로써 석유 등 거기서 생기는 과실을 독식하겠다는 입장에서 물러나 다른 나라들에 도움을 요청하는 손을 내민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고개를 떨군 것은 미국의 일방주의가 암초에 부딪쳤음을 뜻한다.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정책 선회는 힘의 우위로 잠시 세계를 압도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런 일방주의는 국제사회에서 결국 통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던지고 있다.
김광덕 국제부 기자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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