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독자 에세이/희망은 바로 당신뒤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독자 에세이/희망은 바로 당신뒤에

입력
2003.09.09 00:00
0 0

카드 빚에 쪼들리던 주부가 두 자녀와 함께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 주부는 "엄마,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는 아이를 아파트 밖으로 던지고 자신도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니 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벌써 50여년 전의 일이지만 어제 겪은 일처럼 생생하다.어머니는 한국 전쟁이 터지면서 한계상황에 내몰렸다. 당신의 병든 남편, 연로한 시어머니, 다섯 살, 일곱 살 남매가 어머니에게 맡겨진 식솔들이었다. 게다가 피난 길에 지뢰가 터졌다. 쌀 가마니를 싣고 가던 황소는 놀라 도망쳤고 일곱 살이던 나는 허벅지에 파편을 맞아 쓰러졌다. 다행히 나는 미군 위생병에게 응급치료를 받아 목숨을 건졌다.

가냘픈 여성으로서는 감당하기 버거운 운명에 허덕이던 어머니는 어느 날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눈치였다.

특히 다섯 살 된 딸이 젖을 달라고 보채자 절망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머니는 굶기를 밥 먹듯이 하던 터라 젖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 모두 연못으로 가자." 어머니가 나지막하면서도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울부짖었다. "나, 죽기 싫어요!" 어머니는 나의 절규에 흠칫한 표정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꼭 끌어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잠시 후 중얼거렸다. "내가 죽일 년이지. 왜 그런 못된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는 다음 날 토굴(土窟)에 거처를 정하고 무작정 시장에 갔다. 그리고 생면부지의 어느 생선가게 주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제가 새벽부터 가게 앞에 서서 보았는데요. 제게 생선을 떼어 주신다면 내다 팔겠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요."

생선가게 아저씨는 물끄러미 어머니를 처다 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생선을 양동이에 가득 담아 어머니 머리에 올려 주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생선 장사는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생선을 팔고 쌀, 고구마, 좁쌀을 받았다. 그녀는 고달팠지만 나와 동생이 쑥쑥 자라는 것을 희망으로 살았다. 이제 어머니는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나는 어머니의 존재를 느낀다.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한 주부는 따스한 바람이 결코 불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빠졌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의 어느 곳에서 절망에 빠져 있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희망은 바로 당신 뒤에 있다고.

/mschoi5308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