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혈(貧血). 단어 뜻은 피가 부족한 현상이지만 의학적으로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적혈구가 부족하거나 헤모글로빈(혈색소)수치가 낮은 상태다. 적혈구는 우리 몸의 뇌와 심장 등 장기에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흔히 빈혈 환자들이 '어지럽다'는 증상을 호소하는 것은 뇌에 산소 공급이 충분히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빈혈 그 자체는 증상일 뿐 질병은 아니다. 그러나 빈혈은 다양한 질병의 경고 사인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원인을 찾아야 하는 증상이다.여성이 남성보다 4배나 많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세계 인구의 30%가 빈혈환자. 대부분 환자는 저개발국에 몰려있다. 선진국에서는 8%에 불과하나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는 전체 인구 중 30%, 많게는 50%가 빈혈증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약 3∼4배나 더 많이 빈혈증상을 보인다. 통계마다 상당히 차이가 나나 성인 여성은 10∼60%, 남성은 2∼15%가 철결핍성 빈혈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임산부는 빈혈증상이 심해 전체 임산부의 30∼80%가 빈혈을 겪고 있다. 영양부족이 오기 쉬운 성장기 청소년들은 남녀 똑같이 30∼40%가 빈혈 증상을 보인다.
고려대의대 혈액종양내과 김병수 교수는 "전국적인 조사는 없지만 각종 통계를 근거로 우리나라 성인여성 가운데 빈혈환자는 10∼15%, 남성은 1∼3%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석은 고려대안암병원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2003년 1월부터 6월까지 그가 외래에서 진료한 빈혈 환자는 391명. 이 가운데 남성은 100명, 여성은 291명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약 3배정도 많았다.
지역, 인종 따라 빈혈기준 다르다
빈혈은 고도나 기후 같은 지역적, 인종적 특징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인의 경우 혈색소 수치가 여성은 12이하(이하 단위 g/㎘), 남성은 13이하로 빈혈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임신부는 11이하로 잡고 있다.
수치가 높다는 것은 산소와 결합할 수 있는 적혈구 숫자가 많다는 뜻이다. 혈색소 수치가 낮을수록 환자의 빈혈증상은 심각한 상태다. 9이하면 빈혈환자의 기준에 들어가며, 6이하는 심각한 상태다. 여성과 남성의 기준을 달리 잡고 있는 이유는 남성이 활동량도 많고 체구도 커 에너지 대사량이 높고, 체내 산소요구량도 높기 때문이다. 김교수는 "여성의 사회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어 이 기준도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여성은 조혈 능력에서도 남성보다 떨어진다. 여성과 남성은 호르몬구조가 다른데, 남성호르몬인 안드로젠은 조혈작용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빈혈 있으면 집중력 떨어진다
체내 혈액 속에 산소 공급이 제대로 안되면 어떻게 될까. 피곤하고 기운이 없으며,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는 증상을 호소한다. 조그만 움직여도 가슴이 답답하거나 조인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피부는 창백하고 탄력이 줄어든다. 손톱 역시 광택이 줄어들고 허옇게 변한다. 운동 후 호흡곤란이나 빈맥 등 증상이 나타나고 식욕부진 구토 방귀 복부 불쾌감 변비 설사 등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입 주위에 염증이 생기거나 미각도 현저히 떨어진다.
가임기여성 철분 부족 현상 많아
성인여성 즉 가임기 여성에게 이렇게 빈혈증상이 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월경으로 인한 출혈 때문이다. 매달 여성의 출혈량은 평균 35쭬정도. 생리 때 나는 냄새는 적혈구 속 철분냄새다. 1회에 80쭬정도로 과다하게 출혈하는 여성이라면 1일 10㎎의 철분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철은 곡류보다는 육류를 통해 흡수하면 좋다.
김교수는 이 시기의 빈혈은 적혈구를 만드는 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진단한다.
적혈구를 만드는 원료는 철분과 비타민 12, 엽산 등. 철결핍성 빈혈의 경우 체내 저장된 철분량이 정상 적혈구 생성에 필요한 양보다 적으면 발생하는데, 가임기 여성이나 임산부에게 특히 이런 상태가 많이 일어난다는 것. 재생불량성 빈혈은 혈액세포를 만들어내는 조혈모 세포가 부족하거나 기능이 저하돼 발생한다.
임신하면 철분 요구량 늘어나
임신기간에는 철분요구량이 상당히 높다. 산모의 혈액량이 증가하고 태반에도 철분이 축적돼야 하므로 임산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철분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김교수는 "임산부에게 필요한 1일 철분요구량은 첫 3개월간은 1∼2㎎, 다음 3개월은 3㎎, 마지막 3개월은 6㎎"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3개월에 철분요구량이 급격히 증가하는 이유는 태아의 적혈구 생성을 위해서다.
폐경기 여성에게 빈혈증상 보이면?
폐경기에는 월경을 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빈혈증상도 사라진다. 만약 폐경기 여성이 빈혈증상을 보인다면, 위장관 출혈증상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위암 대장암 초기 증상으로 철분 결핍성 빈혈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위염이 심하거나, 위암으로 위를 절제한 경우에도 빈혈이 발생할 수 있다. 재생불량성 빈혈 같은 고약한 혈액질환일 수도 있다.
김교수는 "철분제제를 복용해도 빈혈증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위내시경이나 대장내시경 검사를 꼭 해야 한다"고 권한다.
빈혈증상 있다고 수혈 함부로 해선 안돼
출산 후 수혈을 하는 산모가 많다. 그러나 수혈은 감염 위험이 있는데다, 너무 자주 할 경우 효과가 점점 떨어질 수 있으므로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빈혈증상이 심하다면 의사의 처방을 받아 철분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경구약과 주사약이 있는데 주사약은 과민반응 등 합병증이 많아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경구약은 식사 1시간 전이나 식사 사이시간을 이용해 복용하도록 한다. 빈혈약 복용은 식사시간을 피해야 흡수율을 높일 수 있다. 철결핍성 빈혈환자라면 철분제제 복용 후 1∼2개월이 지나면 대부분의 경우 혈색소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약 복용 후에도 빈혈증상이 지속된다면 다른 심각한 질환 때문일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정밀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yjsong@hk.co.kr
■"다이어트말고 多 Eat하세요"
국내 여성에게 발생하는 빈혈의 상당 부분은 왜곡된 미의 기준으로 말미암은 사회적 병리현상이다. 균형 잡힌 식사를 무시하고, 무리한 다이어트로 만들어진 창백하고 가녀린 미인을 미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많은 젊은 여성들은 불임증상까지 겪기도 한다.
우리가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철분량은 하루 15㎎정도. 이중 10%만이 흡수된다. 따라서 철분량도 많으면서, 흡수가 잘되는 식품을 골라먹는 것이 중요하다. 계란 노른자에는 철분이 많이 들어있지만, 흰자는 철분 흡수를 방해한다.
철분이 많이 들어있는 식품에는 미역 김 다시마 등 해조류,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류, 생선 등 어류를 꼽을 수 있다. 또 코코아나 콩에도 철분이 많이 들어있다.
하지만 우유에 많이 들어있는 칼슘은 철분의 흡수를 방해하고 위장관을 자극하여 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우유를 많이 복용하는 아이에게는 철분결핍성 빈혈이 많다.
과일, 과즙, 철분이 첨가된 곡류 등은 철의 흡수를 도와주는 식품이다.
다이어트가 아니라, 균형있게 다양한 식품을 다(多) 이트(Eat)하면서,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을 다지는 여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김병수 교수 고려대 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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