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거나 찡그린 표정, 바위 뒤에 숨어서 무언가를 엿보는 얼굴, 등을 맞대고 경건하게 서있는 모습…. 인간의 다양한 얼굴과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나한상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국립춘천박물관(관장 최응천)이 개관 1주년을 맞아 8일부터 10월26일까지 여는 특별전 '구도와 깨달음의 성자, 나한'에 나온 나한상 가운데 30여 점의 창녕사지 출토물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에 나온 나한들은 2001년 강원 영월 창녕사지에서 발굴된 290여 점 중 일부이다. 이들은 목이 잘리거나 깨지고 흩어져 있던 부분을 복원한 것으로 대부분이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나한은 일체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한 자격을 지닌 불교의 성자이다. 조선 전기에 제작됐다가 숭유억불정책에 따라 폐기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들은 석영질이 많은 화강암으로 높이 30㎝, 어깨 폭 20㎝ 안팎의 크기.
등을 맞대고 있는 '쌍신불' 형태의 특이한 것도 있지만 평범하고 소박한 얼굴의 좌상들이 많다. 두발 형태는 승려형이 주류를 이루지만 두건을 쓰거나 민머리도 있다. 얼굴은 둥글 납작하며, 눈은 일직선에 코는 두툼하고 낮다. 이들은 스스로 수명을 연장하고, 날아다니며, 변화하는 신통력을 지녔다고 하는 나한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고 친근하다. 나한상이 출토된 건물터는 정면 3칸, 측면 2칸 등 9.8평 정도의 규모이며 그 안팎에 집중적으로 묻혀있던 것으로 보아 여기에 오백나한상을 봉안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 관장은 "나한상은 종교적 색채가 짙은 불상이나 보살상과는 달리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만든 사람의 개성이 한껏 드러나도록 자유분방하게 표현됐다"며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모습을 넘어 파격적이기까지 한 나한상을 통해 선조들의 심성과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춘천=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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